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이 있다. 서울대 소비 트랜드 분석 센터가 발간하는 ‘트랜드 코리아’ 시리즈다. 올해에도 ‘트랜드코리아 2023’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돼 수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누구보다 변화추세를 먼저 이해하고 새해에는 좀 더 지혜롭게 한 해를 설계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트랜드코리아 2023’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저자가 제시한 10가지 소비자 트랜드 중 첫 번째로 제시한 키워드인 ‘평균 실종’이다.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 값으로 주로 사용되는 ‘평균’이라는 개념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평균소득, 평균학력, 평균재산, 평균수명, 평균체중 등 수많은 사례에서 ‘평균’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 사회의 대표적 성향을 이해해 왔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평균이 중요했던 이유에 관해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보편화 되고, 획일적인 집단교육 체제가 등장하면서 동질적인 집단 속에서 개체를 파악하는데 평균이라는 개념이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평균의 개념 역시 되돌아볼 필요성이 생겼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소비집단의 성향이 지나치게 양극화되거나 개인 성향에 따라 다극화됐고 이로 인해 평균적 소비가 전체 소비자를 대변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소비의 형태를 보더라도 아주 비싼 제품이나 가성비가 높은 제품의 수요는 극단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적당한’ 가격과 품질의 제품에 대한 소비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또한 소비자의 성향이 개인화되면서 제품의 공급 형태도 점점 개인 맞춤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구매 행태와 상관없이 남이 하지 않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는 성향 또한 매우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균 실종의 트랜드는 기업의 창업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 알다시피 기업창업에도 ‘대표적인 창업 트랜드’라는 것이 있었다.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고 하면 한동안 생명공학 분야의 기업창업이 붐을 이루고, 탄소중립시대를 맞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 태양광이나 전기, 수소에너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업이 꽃을 피웠다. 실제로 필자가 기업 창업지원을 위한 선정위원회에 참석해보면 이런 트랜드를 반영하는 기업들의 창업 신청이 트랜드가 유행할 때마다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기업의 투자자들도 트랜드에 맞는 기업들에 대해 투자하는 것에 매우 호의적이었던 반면, 이런 트랜드에 맞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한없이 인색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투자자들도 설령 산업의 변화 트랜드에 부합하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대규모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이제는 과감한 투자를 통한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투자수익이 조금 낮더라도 ‘확실한 투자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아 나서는 모양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소비자 선호의 다양화로 인한 평균 실종이 기업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소비자 선호의 다양화되면서 엄청난 시장규모는 아니더라도 작지만 일정 정도 이상의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시장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야라 할지라도 확실한 고객층이 있고 이를 충족시킬 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에게는 지금이야말로 기회이다. 2023년에도 시장 상황이나 전망이 좋아질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트랜드코리아 2023에서 말한 평균 실종이 마이크로 창업의 전성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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