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용각
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얼마 전, 제법 쌀쌀해진 날씨를 핑계 삼아 옷장 정리를 했다. 살 좀 빼고 다시 입을 양으로 묵혀두었던 바지와 자켓을 과감히 재활용 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멀쩡하지만 오랫동안 입지않았던 대여섯벌의 점퍼는 교회의 바자회에 기부했고, 신지 않는 양말과 속옷들도 미련 없이 정리했다. 바자회에 보낸 나의 점퍼들은 몇 시간만에 필요로 하는 손길들에 쥐어져 사라졌다. 요즘 옷이 헤어지거나 더러워져서 못 입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생활패턴이 바뀌고 연령대에 맞지 않아 입지 못할 뿐이지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는 단 돈 몇 천원에 득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전에 교회 바자회에서 성경책과 노트를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득템해서 십여년 동안 잘 사용했던 필자의 경험이 새삼 떠올랐다.

현대 사회는 풍요와 빈곤이 극명하게 대조된 채로 삶에 반영되는 ‘불편함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가진자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고 갖지 못한자는 너무 많은 것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풍요에 대한 상상은 다들 꿈을 꾸듯 좋아하지만 빈곤에 대한 상상은 다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이기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모양의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소외된 이웃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연탄과 생필품, 김장 등의 소액 기부와 집 고치기 등과 같은 환경개선사업에 준하는 목돈이 필요한 다양한 상황들이 언론과 단체와 SNS 등을 통해 자주 노출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안타깝지 않은 곳이 없다. 정부의 10조원 복지예산 삭감으로 내년도 저소득층, 노인과 청년, 어린이 관련 복지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는 기사가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진행되고 있는 복지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예산을 줄이거나 사업을 조정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검토한 후, 지원의 지속성에 대해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원이 필요한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층을 찾는데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진자나 갖지 못한자 모두 그 예산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되어 지고 있다는 공감대를 갖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래된 정책은 과감히 폐지하던지 조정해야 할 것이다.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정책은 계승하여 더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시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 수립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시민이 활동하는 도시의 공간에 대해서도 정비의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대전시가 가지고 있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보존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붐 속에 자칫 그 존재의 가치를 소홀히 하며 시민의 공감없이 사라져 버릴 건축물들의 위태로움이 안타까울 뿐이다.좀 더 나음을 향한 대전시의 방향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근대건축물의 보존, 보전이 시민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득템’의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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