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2019년 11월, 세계적인 영국 팝 밴드 콜드플레이가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출연해 월드투어를 잠정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콘서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는 취지에서였다. 팬들에게도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겠지만, 콜드플레이에게도 한화로 약 6000억원에 달하는 월드투어 수익을 포기하는 엄청난 결단이었다. 그로부터 2년 이상이 올해 3월, 드디어 콜드플레이가 팬들과 약속했던 대로 ‘최대한 지속 가능한’ 월드투어를 시작했다. 티켓 한 장이 팔릴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태양광 패널 에너지를 사용하며 콘서트장에 팬들이 바닥을 발로 구르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전기가 생성되는 장치를 설치했다. 또한 무대는 재활용할 수 있거나 에너지 효율이 좋은 소재를 사용했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콘서트장에 올 때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한 관객에게 할인 코드를 제공했다. 게다가 수익의 10%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콜드플레이의 사례를 들기는 했지만, 탄소배출에 따른 막대한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노라면 탄소중립의 실현은 전 세계적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이같이 탄소 저감을 해 모두가 기꺼이 동참할 것 같아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만 하더라도 그렇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5%, 산업부문 배출량의 31%를 차지할 만큼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적인 탄소 절감 노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이 전국의 10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중소기업의 녹색 전환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를 보면, 녹색 전환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전체의 14.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았다.

콜드플레이는 벌써 몇 해 전부터 고민하며 실행에 옮겼던 일들이 왜 우리 중소기업들에게는 이토록 멈칫멈칫하며 주저하는 대상이 된 것일까? 물론 콜드플레이 사례를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사례와 일대일로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음악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다양한 산업 형태가 복잡하게 뒤섞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에 대한 원인을 콜드플레이와 중소기업이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불확실성과 기회 측면에서의 차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즉, 콜드플레이에게는 3년에 걸친 월드투어 취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기다려 주고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응원해 주고 눈앞의 불편을 감수해 준 수천만 명의 팬들이 있었다. 반면 우리 중소기업은 탄소중립이 가속화되면서 펼쳐질 새로운 시장과 기술혁신의 기회와 위협이 어느 정도일지가 너무 불확실하다. 중소기업에게 체감되는 불확실성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는 IBK기업은행이 실시한 조사에서 탄소중립에 매우 소극적이던 중소기업이 "별도의 제재나 규제사항이 확정될 때" 무려 92.5%가 녹색 전환에 나서겠다고 응답한 것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중소기업이 움직일 확실한 사인을 달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우리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실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고려할 때,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계속 주저하게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제 중소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산학연관 모두가 콜드플레이 펜들처럼 그들의 확실하고 든든한 팬이 돼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이 죽으면 지구도 없다’라는 절박함으로 탄소 중립형 제품의 생산과 구매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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