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충북본사 부국장

최근 정치권의 ‘아무 말 대잔치’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비속어 발언 논란이후 더 경박하고 자극적인 언사들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여야 누구라고 가릴 것도 없다. 상대방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삿대질을 한다. 지금 당장 서로 보지 않을 것처럼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의 발언을 합리화하면서 빠뜨리지 않는 말이 ‘국민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이다.

이들이 가리키는 ‘국민’은 누구인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보자. 현행법으로 국회의원 1명은 선거구민 최대 27만 8000명의 대표이다. 최소로는 13만 9000명이다. 우리나라 총인구가 약 5100만명이니 최대치로 따져도 0.54%의 대표에 불과하다. 선거구민 100%의 지지를 받아 당선한 국회의원이라도 전국민의 1%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말끝마다 ‘국민’을 입에 달고 산다.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국민은 자신을 뽑아준 선거구민만이 아닐 것이다.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은 이들도 국민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그의 출신지, 선거구, 출신학교 등 그와 엮이는 모든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욕 먹이는 행태를 거리낌 없이 한다.

급기야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해괴망측한 주장까지 나왔다. 한·미·일 동해 연합훈련 논쟁 과정에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친일과 반일과 구분 없이 이 말은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임진왜란 등 수많은 왜구 침탈의 역사를 왜곡한 발언임은 틀림이 없는데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다른 근거가 있어 이 말을 했나.

정 위원장 조부의 친일행적까지 소환되고, 그를 여의도로 보낸 선거구민이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 위원장은 "이런 얘기 했다고 나를 친일, 식민사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공격한다. 논평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한다"고 반박했다. 누가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했나. 시중에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일본을 두둔하는 발언은 우리에게는 역린과 같다. 정 위원장은 사방의 비난이 억울하다면 그 억울함을 불러온 분위기 파악에 우둔한 뇌와 가벼운 세치 혀를 먼저 탓해야 한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니 국가의 정책과 목적은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공존사회 구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한다. 정치의 주체가 통치자 또는 정치가인데 나라의 지도자로 불리는 그들의 작금의 행태는 ‘나만’ 살기위한 다양성 공존이 아닌 너 아니면 나, ‘피아’(彼我) 갈라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나와 내편만을 위한 싸구려 정치가 아닌가. 이것에 휘둘리는 지지자들의 행태도 싸구려이기는 마찬가지다.

말 씀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언을 옛 철학자의 발언 등에서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 않는가. 이 속담은 입에 발린 말을 하라는 게 아닐 터이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 존경을 담아 품위가 있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면 효과가 크다는 뜻일 듯싶다. 근거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같은 의미라도 표현하는 방식과 쓰는 용어에 따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천양지차이다. 자신의 발언이 와전되거나 오역돼 비록 억울하고 답답할 지라도 진심을 담아 절제된 해명을 한다면 그 진심이 상대에게 잘 닿지 않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뱉는 정치인의 말은 배설물이고 흉기이다. 이를 모르는 이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당사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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