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까이 자리 지켰지만
멀티플렉스 등장에 ‘쇠락길’
성인영화 상영으로 명맥 이어
지역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
건물 신탁회사 매각돼 폐관
심종순 옹 "갈 데 없어져 슬퍼"

 

[충청투데이 정민혜 기자] "어렸을 때 왔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사라진다고 하니 아쉽네요."

심종순(88) 옹이 1985년 개관해 40년 가까이 운영해 온 동화극장이 26일 문을 닫았다.

26일 오전 찾은 동구 인동 대전천 천변가에 위치한 동화극장은 운명을 예감한 듯 적막이 맴돌았다. 대전에 마지막 남은 옛 극장인 동화극장은 건물이 한 신탁회사에 매각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입구에는 ‘그동안 이용해주신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문구의 폐관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오르자 극장의 주인인 백발의 심 옹이 동화극장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며 동화극장의 연혁을 적어 놓은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보여줬다.

1985년 4월 심 옹이 개관한 동화극장은 1993년 2월 무대에서 시작된 불로 2층이 타버렸고 그해 10월 재개관해 40년 가까이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동화극장은 심 옹이 개관하기 이전인 1950년대 오영근 옛 대전 동양백화점 회장에 의해 극장·휴게공간으로 개장돼 40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 옹은 한때 100명이 넘는 많은 손님이 찾았고 영화 뿐만 아니라 쇼 공연도 진행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으로 동화극장도 여느 영화관과 같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대신 성인영화 상영으로 명맥을 이어오며 지역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이날도 폐관일임을 모르고 극장을 찾았다가 심 옹의 손사래에 발길을 돌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들도 몇몇 보였다.

폐관 소감을 묻자 심 옹은 "지금까지 쉬는 날 없이 365일 운영해 조금 홀가분하다"면서도 "아직도 매일 아침 극장에 출근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제 갈 데가 없어져 슬프다"고 털어놨다.

▲ 동화극장 전경. 사진=정민혜 기자

대전에는 1970년대 동화극장을 비롯해 대전극장, 신도극장, 중도극장, 평화극장 등 17개의 극장이 있었지만 이번 동화극장 폐관을 끝으로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극장 앞에서 만난 인동 주민 오(61)씨는 "10대 시절 이소룡 영화를 보러 동화극장에 온 기억이 있다"며 "추억 속의 공간인데 이제 기록 속에서나 볼 수 있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혜진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대표이사 역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바둑을 두는 등 어르신들의 문화공간 역할을 해왔던 곳이 문을 닫게 돼 안타깝다"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대전시에서 매입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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