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채 대전테크노파크 BIO융합센터 센터장

‘협상’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해 서로 의논함’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협상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정치도 국민을 위해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으로 일종의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권이 정치력은 사라지고 감정싸움과 권력 싸움으로 혼탁해져 있는 것은 바로 정치 집단간 협상의 기술이 발휘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협상은 상호존중과 인정, 그리고 일정부분 양보를 통해 협상주체들이 최종적으로는 윈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호작용의 과정이 협상인데, 우리는 협상할 줄 모른다. 협상을 위해서는 정확한 의사 전달과 상호 존중의 언어 사용이 필수적이다. 어려서는 대부분 가부장적인 부모로부터 일방적인 훈계로 협상의 기회가 없고, 청소년기 학교에서는 일방적인 지식전달의 교육환경 속에서 훈련을 받고, 심지어 수직적인 직장생활은 협상권이 박탈된 듯하다. 필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어린 자녀와 끊임없는 실랑이를 벌이는 부모를 자주 목격하곤 했다. 네다섯 살 정도의 아이에게도 이해가 될 때까지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광경은 협상의 과정이었다. 화를 내는 일이 없다. 화를 내는 것은 협상에 감정이 들어간 것이다. 감정이 들어간 협상은 실패다. 부모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우리와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보고 배움이 컸다. 이기는 것만 가르치는 경쟁사회에서는 협상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과 거리가 있다. 우리는 연속된 협상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 속 일상생활은 협상의 연속이다. 물건 하나 싸게 살 수 있는 것도 판매자와 협상을 잘해야 한다. 따라서 협상의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또한 협상의 기술은 민주주의 초석이 된다. 협상의 기술은 정치력의 핵심역량이다. 협상력이 없으면 소위 정치력이 없다. 정치가 경쟁해서 이기는 것만 남는다면, 혼란의 연속이다. 협상하여 상호 윈윈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일방적인 자기 주장으로 끝나고 잃게 되는 것이 많게 된다. 국가간 외교도 모든 과정이 협상의 과정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협상의 기술이 한 수 위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주의와 삶의 기본이 되는 협상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까?

먼저, 대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대화는 상호작용이다. 우선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화는 관계에 따라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고 감정을 건드리기도 할 수 있지만, 때로는 철저히 감정을 배제해야 할 때도 많다. 두 번째 학교에서 토론, 협상, 논리적 대화법을 가르쳐야 한다. 다행히 요즈음 중고등학교에서 토론을 통해 논리적 대화의 시간이 많이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세 번째, 협상기술을 조직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이제는 모든 조직이 업무상 상당한 수준의 협상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팀원들이 배운대로 실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흔히 협상은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이론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협상기술을 익히고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조직내 노력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수십년 경력의 협상가들로 구성된 선진외국의 경제통상팀과의 협상에서 힘없이 우리의 요구조건을 관철하지 못한 경우나, 노사협상이 순조롭지 못해 높은 철탑에서 쟁의를 벌이고 있는 현장이나, 권력다툼의 정치권의 경우 모두 협상기술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모든 갈등의 원천은 협상력의 부재이다. 이처럼 가정내에서, 교육현장에서 조직내에서 협상기술을 배우고 가르쳐서 협상력 수준이 높아진다면, 경제적 성장과 함께 삶의 질도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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