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모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2020년을 돌아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 2020년 6월 대전광역시 행정부시장으로 부임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코로나19 대응이었다. 당시는 방문판매업체를 통해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 부임과 동시에 하루하루 코로나19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매일 오전 국무총리 주재 영상회의에도 참석했다. 영업 제한으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누구보다 컸다. 지방정부 차원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해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힘겨워하던 지역민을 허탈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정부대전청사에 입주해 있던 중소벤처기업부가 10월 행정안전부에 세종 이전 의향서를 제출한 것이다. 사실상 세종으로의 이전을 공식화한 것으로, 그동안 설마 했던 대전시민과 서구민은 허탈감을 넘어 배신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지역민의 숙원이었던 혁신도시 지정으로 대전에도 공공기관 이전의 길이 열려 기대감이 컸던 시점이라 허탈감과 배신감은 더욱 컸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항의의 목소리를 표출했지만, 공무원 신분인 만큼 대안과 실리를 찾아야 했다. 그해 12월 중기부 이전 관련 관계기관 회의가 대전시를 배제한 채 진행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부시장으로서 대전시가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동시에 ‘기상청+3개 기관’ 대전 이전안을 최초로 공식 제안했다. 마침내 2021년 10월 기상청 등 4개 기관의 대전 이전이 확정됐다. 소임을 다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뿌듯함도 없지 않았으나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최근에야 비로소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지난 15일 대전시와 서구, 방위사업청이 대전 이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가 방사청 대전 이전을 국정과제로 발표한 지 단 5개월 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오는 2027년까지 정부대전청사 유휴 부지에 신청사를 건립해 이전한다. 이에 앞서 방사청 지휘부를 포함한 직원 200~300명이 당장 내년부터 월평동 옛 마사회 건물을 임시 사용한다. 방사청은 상주 인원만 1,600명으로, 세종으로 이전한 중기부의 4배 규모에 달한다.

협약서에 서명하는 감회는 남달랐다. 사실 서구청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중기청의 세종 이전이었다. 행정부시장이자 시민의 한 명으로서 느꼈던 비애와 무력감은 30년 공직생활을 하며 겪은 어떤 상황보다 컸다. 부시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직면했던 일이 중기부 세종 이전이었는데, 민선 8기 서구청장으로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이루어진 일이 방사청 대전 이전이니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기청이 떠나며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서구민들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축포를 터뜨리기는 이르다.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협약에서 약속한 것처럼 서구는 대전시와 협력해 방사청 신청사 건립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와 이주 직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대전이 방사청 이전을 통해 명실상부한 국방혁신도시로 거듭나는 일에도 힘을 모을 것이다. 서구에 둥지를 틀게 될 방사청 직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대전에 오길 잘했어!"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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