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산 전경.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 전경. 충남 보령시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 보령 성주산(聖住山)은 보령시 미산면과 성주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보령을 상징하는 명산인 성주산은 680m로 주변의 산자락을 아우르는 웅장하고 멋진 산세와 탁월한 서해 조망이 자랑거리인 곳이다.

성주산 동쪽은 문봉산(633m), 서쪽은 장군봉(583m)으로 능선이 연결돼 골이 깊고 산림이 울창해 단풍 등 경관이 아름답다.

장군봉에 서면 서해안 바다가 손에 잡힐 듯 조망되고 북쪽으로 오서산이, 서쪽으로는 만수산과 그 아래 월명산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날이 좋으면 공주 계룡산, 예산 가야산, 온양 광덕산까지도 조망된다.

성주산(聖住山)은 성인·선인들이 살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동지지』에서는 "성주산의 서쪽에서 벼룻돌[硯石]이 나는데, 검은색으로 품질이 좋다"고 기록했다.

『여지도서』에는 성주산의 위치 정보와 함께 청양현의 백월산(白月山)이 성주산의 주맥이라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조선지도』에는 남포현과 보령현의 경계부에 성주산이 표기돼 있다.

성주산은 산수가 아름답다.

명산대찰이라는 옛말이 있듯 이 성주산의 골짜기에 나말여초의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성주산파의 종찰인 성주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그 절터에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그 밖에도 심원골, 화장골, 물탕골, 조계골 등 골짜기가 아름답고 숲도 짙고 좋다.

화장골에는 8모란의 명당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성주산 일대에는 모란꽃 모형의 명당이 8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주산 휴양림이 위치한 계곡에 감춰져 있다고 해 화장(花藏) 골이라 부른다.

보령시민의 고향 성주산은 보령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저 아름다운 산이라거나 역사가 깊은 산이라는 정도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보령 사람들은 성주산을 고향 자체로 인식한다.

어디를 가나 고향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산인 것이고 잠시라도 떠나있다 돌아올 때면 병풍처럼 펼쳐진 성주산을 먼저 바라보면서 고향에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산이다.

성주산 단풍길.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 단풍길. 충남 보령시 제공

◆ 역사적 인물 및 사건

성주산에는 성인과 선인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의 성주 품 안에 자리를 잡은 성주사가 있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8세손인 무염(無染)이 당나라로 가서 오랜 기간 수행한 뒤 귀국해 이 산에 있는 오합사(烏合寺)에서 입적했는데 성승(聖僧)이 살았던 절이라 해 성주사(聖住寺)라 부르고, 그 산의 이름을 성주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낭혜화상 무염(朗慧和尙 無染)은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801년(애장왕 2)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조부 때까지는 진골 귀족이었지만 아버지 김범청(金範淸)에 이르러 육두품으로 강등된다.

같은 태종무열왕계 후손인 김흔의 후원으로 성주사(聖住寺)를 건립하고 성주사를 선문구산(九山禪門) 중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본산으로 삼아 40여 년 동안 교화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원조인 도선국사가 성주산에 들러 노래한 다음과 같은 한시도 전해진다.

‘가며 가며 길 트인 깊은 성주산 / 구름안개 겹겹이 쌓여 있는 곳 / 모란줄기 어디에 꺾어지는가 / 푸른 산 첩첩이 물 천 번 도네.’ 시를 새긴 비가 화장골 성주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 있다.

성주산 휴양림 꽃무릇.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 휴양림 꽃무릇. 충남 보령시 제공

◆ 문화유산

▲ 성주사지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 말기에 발생한 9산선문 중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성주사지는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재적 다양성을 지닌 사찰 터이다.

현재 탑비와 석탑만이 남아 옛 영화를 겨우 짐작게 한다.

성주사지에서는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유장한 역사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사적 307호로 지정된 성주사지에는 현재 국보 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보물 19 호 오 층 석탑, 보물 20호 중앙삼층석탑, 보물 47호 서삼층석탑, 지방문화재인 동삼 층석탑과 석계단과 석등이 있다.

▲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保寧 聖住寺址 大朗慧和尙塔碑)

성주사 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절터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 중에서 가장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 솜씨가 작품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돼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성주산 휴양림 편백나무숲.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 휴양림 편백나무숲. 충남 보령시 제공

▲ 성주산 휴양림

성주산 휴양림은 성주산의 대표 관광지로 편백나무숲과 야영장, 산책로 등 삼박자를 갖춘 가족 휴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야영객들과 휴양객들의 편리를 위해 야영장에는 평상 40개가 마련돼 있으며, 화장실과 세면대 등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

야영장 이용료는 1일 2,000원, 평상 1일 2,000원으로 저렴해 인기를 더한다.

이와 함께 9동의 숲속의 집과 최신설비로 단장한 8실의 산림문화휴양관이 울창한 숲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휴양림을 찾는 이용객에게 쾌적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숲속의 집 인근에는 치유의 숲으로 잘 알려진 편백 숲이 있어 힐링을 위한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편백 숲에는 중부지방에서 드물게 40~50여 년 된 수천 그루의 편백이 조성돼 있어 녹음 짙은 이맘때 피톤치드로 샤워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또 성주산 맑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에는 산림해설 판과 수목 이름표, 야생화 식재, 시비 공원 등의 교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주산 산줄기.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 산줄기. 충남 보령시 제공

◆ 설화

성주산은 조선시대 기인(奇人)의 인물 담으로 유명한 이지함 전설이 있다. 이지함은 조상의 묘를 좋은 데 쓰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뒤 성주산 팔모란(八牡丹) 명당을 찾아 나섰으나 비범한 지술(地術)을 가졌음에도 산신의 도움을 얻지 못해 결국 명당을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 지역에는 신라의 최치원과 연관된 전설이 다수 전한다. 최치원이 한때 대천 앞바다의 한 섬에서 논 적이 있는데, 자정만 되면 반석 위의 바위를 저절로 회전하게 해놓고는 그곳을 떠나면서 “이 바위가 회전을 멈추는 날이 내가 생명을 마치는 날”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바위 이름이 자마석(自磨石)이 됐다고 한다.

성주산의 효자 설화도 전해진다.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식을 약으로 달여 병을 구완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고 동삼을 끓여 병을 낫게 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성주산에서 내려다 본 보령시 전경. 충남 보령시 제공
성주산에서 내려다 본 보령시 전경. 충남 보령시 제공

◆ 등산 코스

1 코스 : 성주 상수도정류장 - 임도삼거리 - 등산로 - 임도 - 백운사 능선 갈림길 - 성주산 정상(장군봉 677m) - 장군고개 - 임도 - 편백나무숲 - 삼거리갈림길 - 성주 상수도정수장 (약 6km, 약 2시간 30분)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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