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미 ETRI 글로벌협력실 위촉연구원

최근 EBS의 ‘당신의 문해력+’에서 성인 대상 ‘문해력 테스트’를 배포했다. 방송 제작 및 연구가 목적이다. 이처럼 요즘들어 ‘문해력’이 화제다. ‘금일’이 ‘금요일’로 읽혀 오해가 발생하거나, ‘심심한’ 사과가 ‘깊고 간절한’ 사과가 아닌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로 받아들여져 소통상 장애가 일어나기도 한다. 맥락상 ‘금일’은 ‘오늘’이었을 테고, ‘심심한’은 ‘정말’ 내지는 ‘진심’의 뜻을 담고자 사용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자는 공식적 입장을 대변하다 못해 사뭇 형식적으로도 들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진심으로 죄송해서 그 말을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당 단어를 고른 SNS 담당자를 힐난하고 싶지 않다. 이처럼 일순간 읽히는 것과 마음 안으로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기술경영’을 배우고 있다. 기술경영 안에는 여러 분야가 있는데, 필자가 흥미를 갖는 분야는 ‘기술사업화’다. ‘기술경영 인간중심의 기술사업화’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다. 책에 따르면,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얼렁뚱땅 일어나는 것이 아닌 치밀한 전략하에 이뤄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적개발원조(ODA)는 위선을 넘어 전략적 위악으로 읽혔다. 왜냐하면 ODA가 전략적 사고의 소산 그 자체라고 흔히들 읽는 ‘외교’와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원에서 직접 ODA 사업 업무에 임해보니 해당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연구원의 역점 사업 특성상, 첨단기술 동향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ODA에서는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적정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즉, 기술 공급자뿐만 아니라 기술 수요자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기술의 ‘가능성’보다는 ‘유용성’ 및 ‘실효성’에 비중을 둔다. KDI에 따르면 적정기술은 지역중심적이다. 공개된다는 점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글로컬’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가온 ODA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식견을 넓게 해야 함을 일깨워줬다. ‘심심한 사과’를 예로 들어 언급했던 위와 마찬가지로, 일순간 스캔 된 이미지와 마음에 막상 들어온 심상에는 차이가 있다.

학부시절 공부한 ‘색재화학’은 이와 닮았다. ‘빛과 물질의 광학적 상호작용’에 따르면 물질에 닿은 빛은 번지거나, 받아들여지거나, 오해되거나, 몰 이해되거나, 깊숙이 파고들어 물질을 꿰뚫고야 말곤 한다. 차례로 산란, 흡수, 굴절 혹은 반사되거나 투과되는 것이다.

마음에 닿은 말 또한 그러하다. 말은 마음에 번지거나, 받아들여지거나, 때론 오해를 사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고, 말이 예상치 못하게 마음 깊숙이 박혀 마음에 구멍이 날 때도 있다. 물감들은 섞이면 점점 검어지고, 빛들은 섞이면 끝내 하얗게된다. 검은 저의를 기필코 읽어내 상대방보다 우위를 거머쥐고자 하는 태도보다는 손타지 않고 눈 닿지 못해 아직 하얀 마음을 읽어보려는 자세가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그런 자세를 갖지 못하더라도, 말로써 되뇌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곁에 두고 꺼내 읽어야 하는 말엔 흔히들 무게가 실린다고 한다. 필자는 그 말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본다. 분명 ‘힘’이 될 것이다. 사과를 본 뉴턴이 말했듯, F=ma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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