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다 보면 "어디 새로운 기술 있으면 하나 소개해 주세요"라는 주문을 자주 듣게 된다. 그래서 왜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신지 물어보면, "솔직히 기업이 어렵다 보니 기존 제품을 파는 데에도 여력이 없었는데 막상 제품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하니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어서"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이 ‘제품수명주기’라고 해서 일단 제품이 시장에 도입되고 나면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는 마당에 중소기업 제품이라고 그 단계를 피해 가지는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의 주기를 알고서 시기에 맞게 적절한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중소기업 대표들에게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은 처한 현실을 고려할 때 조금은 가혹해 보인다. 중소기업 경영이 한순간이라도 호락호락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함께 찾아가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주문을 하시는 중소기업 대표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정작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면서 개발인력의 기술력도 축적됐을 것이고 생산 공정상의 노하우도 생겼을 터인데, 매출이 정체되고 있다고 자신의 기업에서 일어난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과 노하우가 시장경기의 흐름이 주기 반복적인 산업구조일 때는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여전히 유효한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수익은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제품의 지속적인 경쟁우위 요소로 작용해 점진적인 수익 증가에는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외부로부터 확보해서 기업의 신제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은 신기술의 사업화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이 외부로 확보한 신기술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인지, 아니면 보유한 기술과 전혀 다른 기술인지에 따라 신기술의 사업화 성공률에서 적게는 수십 퍼센트에서 크게는 수 배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기업의 대표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찾기에 앞서서 무작정 내부의 기술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의 경쟁력이 어떠한 수준에 있는지를 정당하게 평가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업 대표들이 처음 필자에게 던진 질문에 앞서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보유한 기술력의 기반 위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기술 분야’가 무엇인지와 그 기술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요구되는 기술 분야가 무엇인지를 ‘특정’한 후 해당 기술의 ‘특성’이 기술의 진보가 얼마나 빠른 기술인지, 투자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해당 기술이 기술 진보가 매우 빠르고 투자위험도 크고 자체 개발이 어렵다면 그때 비로소 외부로부터의 기술획득이 의미를 갖게 된다. 지금까지 왜 수많은 기업이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 외부로부터 기술을 수혈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화하는 데 실패하는 것일까? 혹시 기업이 처한 지금의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한 것에 연유한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제대로 평가해 자신의 기술경쟁력에서부터 새로운 기술개발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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