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모 대전 서구청장

학익진(鶴翼陣)은 학의 날개처럼 적을 포위하는 진법이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첩에서 수적 열세에도 학익진으로 일본 수군을 궤멸시킨다.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만 고집하지 않았다. 주변 지형과 물길, 수집된 적의 정보를 이용해 유인전과 접근전을 적절히 사용했다. 학익진으로 포위전을 펼치다가도 적절한 때가 되면 정면으로 돌진해 적선을 부수는 당파(撞破)전을 구사하기도 했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전술 변화가 23전 23승이라는 불패 신화를 남긴 비결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처럼 전장에서는 유연한 전략가였지만, 일상에서는 원칙을 고수하는 청렴한 공직자였다. 청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동나무 일화’가 널리 회자한다. 그가 전라좌수영에서 만호(萬戶)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가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만호 공관의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명하자 이순신은 이런 말로 거절했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파직을 무릅쓰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전란의 위기에 흔들리는 국기(國紀)가 아니었을까? 지금 서구는 갈림길에 서 있다. 활력을 잃어가는 과거에 머물 것인가, 대전의 중심으로 전진할 것인가. 적기(適期)를 놓치면 퇴행을 피할 수 없으며, 지금이 바로 서구 변화와 혁신의 골든타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자부터 변해야 한다. 청렴을 바탕으로 한 신뢰 회복은 변화와 혁신의 엔진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서구의 청렴도는 구민들의 신뢰를 받기 어려웠다. 2021년 종합청렴도 평가 점수는 대전 5개 구는 물론 전국 자치구 평균보다 낮았다. 외부청렴도는 최하위 등급을 면했지만, 내부청렴도는 최하위 등급에 머물렀다. 공직 내부의 변화와 혁신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서구는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고강도 반부패·청렴 시책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추진에 나섰다. 청렴실천으로 투명한 공직문화 조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청렴역량 강화 및 진단, 부정부패 무관용 원칙 확립, 청렴문화 확산, 부패 예방(감시) 활동 강화, 소통·공감하는 인사 운영 등 크게 5개 과제를 설정했다. 관행적으로 답습했던 기존의 시책에서 과감히 탈피해 간부 공무원부터 피부로 느끼고 실제로 청렴도를 높일 수 있는 고강도 세부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특히 취약 분야였던 인사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청렴은 서구 발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보츠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 최상위 수준이다. 자원이 풍부할수록 극심한 내전과 가난을 겪어야만 했던 검은 대륙의 다른 나라와 달리 보츠와나는 ‘자원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꿨다. 강력한 반(反)부패 정책 덕분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전담 기구를 신설했으며 공직자 비리에 대해서는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1966년 독립 이후 보츠와나가 30년 동안 연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힘이다. 이처럼 청렴은 국가도 부강하게 만든다.

이순신 장군은 청렴의 리더십으로 수십 배 많은 적을 물리쳤다. 보츠와나는 청렴 강국이 자원 강국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아니, 옳은 것이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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