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진 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

씨랜드 화재, 이천 냉동창고 화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화재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형화재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대부분은 유독가스에 의한 참사라는 결과들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의 대형화재에서는 유독가스에 의한 참사들이 많이 일어나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화재의 피해 확산요인은 대부분 부실, 불량건축 자재와 불연성이나 난연성이 제외된 건축자재를 활용하면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2020년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후, 정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해 건축물의 화재 안전을 위해 창호에 대한 화재 안전기준 등을 강화하는 건축자재 품질 인증제를 시행했다. 일본 등 선진국의 창호와 비교해 너무나 화재에 취약했던 창호를 최소한의 시간을 버텨줄 수 있는 난연재를 사용토록 2020년 12월 건축법을 개정, 같은 해 12월 22일 대통령이 이를 공포하고 지난해 6월 23일부터 법령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는 강화된 건축법이 시행되고 시행령을 통해 3층 이상의 공동주택, 병원, 학교 등 특수건축물에 이를 적용키로 했으나 시행규칙 제정을 아직도 미루고 있어 법령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관련 시행규칙 제정이 미뤄지므로 나타나게 될 수많은 갈등의 발생과 무엇보다 소중한 국민의 생명이, 지속되는 화재로부터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데 있다.

부처의 시행규칙보다 우선되는 관계 법률과 시행령으로 인해 지난해 6월 23일 이후 건축허가를 받게 되는 적용대상의 신축 건축물에서 기존과 같이 난연성이 아닌 열효율 등급만을 내세운 창호 등을 사용했을 경우 이는 분명한 법률위반이 되므로 이로 인한 고소·고발과 재시공 등으로 건축 시장 자체에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법률에서 보호하려던 국민의 생명 또한 이전과 같은 처지에 계속 놓일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는 관련 운영지침에서 난연성능 시험 시 응용·수축기준을 완화하고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심재의 사용 기간을 연장해 줌으로 입법 취지를 무력화시켰을뿐, 산하기관인 건설기술연구원의 시험을 법률에서 정하는 난연성능 시험이 아닌 준불연성능 시험을 실시해 마치 난연성능을 가진 창호가 없는 것처럼 왜곡하기도 하는 등 대형 인명피해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모습을 보인다.

출범 100일이 지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것이 ‘공정과 상식’이다.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통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민의 생명 보호보다 앞설 수는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경제성을 내세우는 행정은 더 우리 사회에 존재하면 안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제 특정 업계의 이익 대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입법 취지가 실현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경제 논리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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