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국정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제대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 마자 도중하차 하는 일도 많았고….

그러나 노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유독 성공한 사람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꼽는다.

그는 외교통상부 장관시절 참여정부가 미국과의 끝없는 갈등을 겪고 정부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을 때도 개인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친미·반미, 그 어느 쪽에서도 적(敵)이 없었다.

반기문 총장의 이같은 자세를 미국의 언론은 '뱀장어'(slippery eelㆍ난감한 질문을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북한 핵문제나 이라크 평화문제, 이란 사태… 등등, 미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미국 언론의 집요한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반 총장이 이리저리 잘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이 그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 매끄러운 반 총장을 '뱀장어'란 별명을 붙인 걸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 살면서 누구를 만났는가가 그 운명을 가르듯이 '인간 반기문'도 그랬다.

특히 학교가 끝나면 돼지우리에서 나오는 냄새 지독한 분뇨를 과수원에 퍼다 주는 등 가난한 농촌 소년 반기문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두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충주고등학교 2학년 시절 영어를 가르쳤던 김성태 교사.

김 교사는 반기문의 잠재적 영어소양을 발견하고 용기와 꿈을 키워 주었고 영어 하나만을 '미치도록' 파고들게 만들었다.

김 교사는 반기문을 청소년적십자단(RCY, Red Cross Youth)에 가입시키기도 했는데 이것이 '외교관 반기문'으로 가는 인생의 문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1962년 고3 때 반기문이 미국 적십자에서 실시하는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미국에 가서는 백악관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예방하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때 케네디는 반기문 소년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반기문 소년은 '외교관'이라고 또렷이 대답했었다.

결국 그는, 그로부터 45년 만에 국제 외교가의 최고봉인 유엔사무총장이 되어 미국땅에 다시 발을 들여 놓았다.

따라서 반기문에게 영어의 불을 붙여주고 적십자활동을 시켜 미국에까지 가게 만든 김성태 교사는 매우 특별한 첫 번째 스승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인물이 당시의 충주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반기문 학생이 미국 적십자초청 프로그램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의 위기에 처했었다.

한국 청소년적십자를 대표하는 입장인데 '반기문의 콧등에 볼록 튀어나온 점' 이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적십자당국에 자신이 책임지고 '콧등의 점'을 수술 할테니 합격시켜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충주로 내려와 충주 비료공장에 있는 미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미대사관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도록 로비를 벌였다.

그 교장선생님의 뜨거운 제자사랑은 마침내 닫혔던 문을 활짝 열게 했고 오늘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되게 하였다.

지난주 각급 학교가 일제히 입학식을 갖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흔히 오늘날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고 한다. 투쟁만 가득한 학교라고 개탄하는 소리도 높다. 그래서 교단에서는 반성이, 사회에서는 스승존경운동 목소리가 퍼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새 학기 ― 어느 교육자는 말했다. "1학년 때의 담임이 인생의 60%를 좌우한다"고. 정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등학교 은사 같은 교사를 많이 볼 수 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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