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무더운 여름, 먹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지고, 분홍빛 복숭아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장화발로 고인 빗물을 질척거리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여름비는 즐거운 장난의 소재였고 살아있는 교육자재였다. 차오르는 대전천의 위험은 그저 어른들의 걱정거리였을 뿐, 땅의 골을 따라 흐르는 물에 나뭇잎 배를 띄우고 따라가며 낄낄대는 유년의 모습은 영락없는 철부지였으리라.

올 여름 장마는 이상기후로 인한 무서운 폭우의 모습을 또다시 보여줬다. 서울과 인근 청주의 도심 곳곳이 침수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면서 기후위기는 이제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앞선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 측정 결과 일강수량이 453㎜에 달했고, 시간당 최고 강수량이 136.5㎜이 이르러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재해 예방의 단계를 과거 경험의 빈도 예측보다 더 강화된 기준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될 듯 싶다.

강남 일대가 침수된 것은 주차장과 도로로 땅이 덮여 배수가 안 되는 불투수 면적이 넓은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배수와 통수 용량을 높이고 빗물저류조도 설치하였으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폭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방재대책이 복구보다는 예방을 위한 선제적 종합 계획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경제적 관점이 아닌 위기 대응의 측면에서 설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전시도 이번 장마로 곳곳에서 침수피해와 도로 맨홀이 뒤집히는 사고가 이십여 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배수지원과 안전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이 잘 흐르게 하는 배수시설의 정비와 급격히 불어나는 것을 완화하는 저류조의 보강이 필요하다. 또한 도심 내 녹지비율을 높이고 건축물의 옥상 및 대지의 녹화도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좀 더 계획적으로, 좀 더 선제적으로 치수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예산을 핑계로, 절차의 번거로움으로 더디게 손을 움직였다가는 ‘천재’가 아닌 ‘인재’가 되기 십상이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유기적이다. 어느 한 쪽이 마비될 경우 전체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각의 독립성과는 별개로 상호간의 관계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재난관련 부서에서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 건축관련, 도시관련, 녹지관련, 환경관련 등 각 부서에서 치수에 대해서 함께 아이디어를 내어야 할 것이다. 형식적이지 않고 진정성 있는 그런 정책이 수립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로 사장되거나,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최근 침수에 대응하는 한국민의 우수성을 알리는 장면이 외국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고 알려주는 영상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우수한 국민성에 걸맞는 정책이 수립되길 바란다. 골목길 얕게 고인 빗물에 질척대는 어린아이의 노란 장화를 바라보며 떳떳한 어른이 되고자 다짐하게 되는 것은 아직 철부지의 동심이 남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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