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전경. 충남 예산군 제공
가야산 전경. 충남 예산군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가야산(678m)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에 걸쳐 있는 가야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비록 높이는 600m급이지만 내포평야에 우뚝 솟아있다.

정상인 가야봉(678m)을 비롯해 옥양봉(621.4m)과 석문봉(653m)이 산군을 이룬다.

유서 깊은 문화유적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찾아 매년 많은 관광객이 가야산을 찾아오고 있다.

가야산 일대에는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돼 노약자 및 여성, 어린이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는 서해가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하다.

대개의 산행은 남연군 묘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석문봉에 가까운 안부에서 석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로 시작되거나 마무리된다.

가야산은 충남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자 문화 창조의 원천이었으며, 내포 지역의 지리적 전형성을 형성하는 데 바탕이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야산과 상왕산(象王山)은 인접한 서로 다른 산이지만, 두 산을 하나의 산체로 인식해 부르기도 하는데, 두 산을 합쳐서 가야산이라 부른다.

가야산은 본래 붓다(Buddha)가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야(Buddhagayā)의 서북쪽에 인접한 산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호산록(湖山錄)』에“가야산이라는 이름은 본래 불서 가운데서 유래된 것이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가야산 지명이 불교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가야산은 백제 때 상왕산이라 불렸는데, 신라 통일 후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세운 뒤 가야산이라 했다고 전해진다”라는 주장도 가야산 지명의 불교 관련설과 관련된 것이다.

가야(伽倻)라는 산 이름은 불교에서 신성시되는 코끼리, 즉 상왕(象王)의 범어(梵語) 카야(Kaya)에서 유래됐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야산 자락에는 개심사, 일락사,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등 불교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 가야산 지명의 불교와의 관련성을 보여 준다.

가야산을 흔히 ‘호서 불교의 성지’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가야산의 지명 유래가 불교와 깊이 관련돼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가야산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 불교 관련 특이설로서 ‘개산 및 불교 성지설’이 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해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하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바로 그때에 개산이 중요한 지표 역할을 했다. 이후 항해가 발전하고 새로운 직항로가 개발됐지만, 여전히 개산은 선원들에게 고향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가야산 남연군 묘. 충남 예산군 제공
가야산 남연군 묘. 충남 예산군 제공

◆ 역사적 인물 및 사건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자기 부친 묘를 옮겨 아들과 손자를 천자(天子)로 만든 땅이 가야산이다.

가야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남연군의 묘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묘의 위치를 가리키는 망주석, 묘를 밝히는 장명등, 혼유석, 석양(石羊)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장식돼 있다.

남연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7대손이다.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대원군은 부친 남연군 관을 상여에 싣고 자그마치 500리가 넘는 길을 내려갔다.

1845년 대원군은 “가야사 석탑 자리에 묏자리를 쓰면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온다”는 지관 정만인 귀띔에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묘를 충남 예산으로 옮겼다.

이에 대원군이 전 재산을 털어 가야사 주지를 2만 냥으로 매수한 뒤 가야사를 불 질러버리고 석탑을 도끼로 부순 다음 그 자리에 묘를 옮겼다.

형제들이 악몽을 꾸고서 석탑 부수기를 주저하자, 대원군이 직접 도끼로 내려쳐 탑을 없앴다.

실제로 대원군의 아들 고종과 손자 순종 등 2대가 왕위에 올랐다.

남연군 묘의 지세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뒤로 가야산 서편 봉우리에 두 바위가 문기둥처럼 서 있다는 석문봉(石門峰)이 주산이 되고, 오른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덕산을 거치면서 30리에 걸쳐 용머리에서 멎는 청룡세를 이룬다.

왼쪽으로 백호의 세는 가사봉, 가엽봉에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맥이 금청산 월봉에 뭉쳐 감싼 자리이다. 동남향을 바라보면 평야를 지나 멀리 6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鳳首山)이 안산이 된다.

원래 이 자리에는 99개의 암자를 가진 가야사가 있었다. 대원군이 아버지 묘로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사르고 탑을 허물고 했다지만 최근에는 대원군 이전에 이미 절이 소실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석문봉 돌탑. 충남 예산군 제공
석문봉 돌탑. 충남 예산군 제공

◆ 문화유산

가야산은 가야산 자체와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상왕산 서남쪽 계곡에는 백제시대 사찰인 보원사의 초석 등 유적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추진된 대규모의 산지 개발로 인해 목장이 조성됐다.

가야사는 가야산에 있던 절이다.

가야사가 있던 곳은 가야동이라고 불리는데 사역(寺域)은 넓은 골짜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가람의 규모가 엄청나게 웅장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9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며, 절터의 중심지라고 전하는 곳에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있다. 예산 가야사지는 1998년 12월 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됐다.

가야산과 서원산(書院山)(472.7m) 사이인 덕산면 상가리에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가 있는데,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 E. J.)가 아산만을 거쳐 구만포에 상륙해 도굴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가야산에는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보덕사, 일락사 등이 있다.

또 국보 1점, 보물 6점, 기타문화재 4점 등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산재한 내포 문화권의 핵심지역이다.

가야산 설경. 충남 예산군 제공
가야산 설경. 충남 예산군 제공

◆ 설화

가야산 부석사에 200여 년 전 지령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지령대사는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사람이었는데, 풍수에도 능통해 찾아와 묏자리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령대사가 어느 날 가야산 고갯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떠꺼머리총각이 나타났다. 떠꺼머리총각은 상복 차림의 상주였는데, 지령대사 앞에 오더니 공손히 인사를 했다.

지령대사는 마침 동행을 만나 반갑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오르다 쉬게 됐는데, 지령대사가 자리를 잡고 앉자 떠꺼머리총각이 갑자기 큰절을 올리며 “대사님께서 풍수에 능통하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묏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대사님께서 잡아 주시면 그 은혜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지령대사는 총각의 청이 너무 간절해서 묏자리 하나를 잡아 주며 “이곳에 묘를 쓰면 자손이 끊이지 않고 조석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요”라고 했다.

떠꺼머리총각은 다시 큰절을 한 다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러고는 지령대사의 뒤를 따라가다가 또다시 지령대사의 옷자락을 잡으며 “대사님! 이왕이면 과거 급제해 영감 소리나 한번 들을 만한 곳으로 골라 주십시오” 하고 청을 했다.

지령대사는 이번에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묘를 쓰면 원님 하나는 틀림없이 나올 것이요” 하고 자리를 잡아 주었다.

이번에도 떠꺼머리총각은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고는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령대사가 다시 길을 떠나려 하자 떠꺼머리총각은 술과 안주를 꺼내어 놓고 권했다. 지령대사는 마침 출출하던 차라 술을 몇 잔 들이켰다.

대사가 술이 얼큰해진 것을 눈치 챈 총각이 다시 입을 열며 “대사님이 천하의 명사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이처럼 큰 산에 만인지상인 영의정이 날 자리를 하나 못 고른다고 해서야 말이나 됩니까”라며 다시 졸라 댔다.

지령대사는 거절을 하지 못하고 다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명당자리를 고르려 했다.

그러자 떠꺼머리총각이 갑자기 지령대사를 땅바닥에다 메치고는 “이놈! 네가 다시 이 가야산을 넘는 날에는 그날로 죽을 줄 알아라” 하며 지령대사를 꾸짖었다.

떠꺼머리총각은 가야산 산신령이 변신했던 것이다.

산신령이 떠꺼머리총각으로 변신해 지령대사를 찾아온 것은 가야산에 있는 남연군의 묏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가야산 석문봉. 충남 예산군 제공

◆ 등산코스

1 코스 : 가야산 주차장 - 옥양봉 - 석문봉 - 가야봉 - 가야산 주차장(10.65km, 5시간 20분)

2 코스 : 옥계저수지 - 서원산 - 옥양봉 - 석문봉 - 가야봉 - 원효봉 - 퇴뫼산 - 주차장(싸이판) (15.05km, 8시간 20분)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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