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윤 남대전농협 지도경제팀장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 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식량품을 비롯해 의복·주옥의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느니만큼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민의 세상은 무궁무진합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가 1927년에 지은 ‘농민독본-한글 편’의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무지한 농민을 일깨우기 위해 약관의 나이에 쓴 ‘농민독본’이 지금 우리 농업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1991년 11월 11일 농협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에서 쌀 수입개방 논의가 본격화되자 ‘쌀 수입개방 반대 백만인 서명운동 전진대회’에 돌입한다. 벼랑 끝에 선 심정에서 시작한 서명운동은 애초 11월 20일까지 100만 명 서명을 목표로 했으나 열흘 만에 서명인 222만 3천 명 기록한다. 내친김에 농협은 이를 ‘쌀 수입개방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으로 키우고, 그해 12월 18일 서명 인원 1천만 명, 12월 22일 1307만 명을 돌파하며 대장정을 마친다. 서명인 중 도시인 비율이 70%였을 정도로 전 국민의 지지가 전폭적이었다. 쌀 수입개방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은 ‘최단 시일 내 최다 서명’세계 신기록으로 인정돼 1992년 6월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쌀 수입개방에 맞서 ‘신토불이’를 외치며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우리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일이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쌀 창고에 쌀이 넘쳐나고 있어도 누구 하나 쌀 소비에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농업인의 대표기관인 농협만이 발 벗고 나서 이런저런 캠페인을 벌이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얼마 뒤면 곧 추수철이 다가온다. 아직까지 큰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없는 만큼 올해도 별 이변이 없는 한 풍년농사가 예상된다. 풍년농사라 하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 한 것이 현실이다. 넘쳐나는 쌀로 인해 올 수확한 쌀의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부족하다. 30년 전 쌀 수입개방에 분개하며 내일처럼 나서 주었던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진심으로 요구되는 때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가 ‘농민독본’에서 이야기했듯이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억만 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이다. 식량안보가 중요시되는 이때 30년 전 ‘신토불이’를 외치며 쌀 수입개방 반대 운동을 벌였듯 쌀 소비촉진 운동이 전 국민이 동참하는 제2의 신토불이 운동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