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수 대전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세계 휴대폰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며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핀란드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운전하다 적발돼 11만 6000유로(1억 3000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회장이나 장관이나 노점상이나 알바생 등 누구나 도로에서 20km 이상 과속을 하면 약 6만원 정도의 획일적인 금액으로 범칙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범칙금을 차등 부과한다. 즉 교통단속에 적발되면 경찰은 먼저 국세청에 운전자의 소득을 조회해 과태료를 부과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과태료를 그리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낮은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처럼 사회지도층인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격언이 있다. 국가가 바로서기 위해서 사회지도층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프랑스어로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다. 즉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회지도층은 자신의 사회적 권한에 맞게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지도층은 납세의 의무, 병역의 의무 등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 서야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보이겠지만, 미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조지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며 워런버핏 등 미국의 1000여명의 재벌들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 이에 더하여 버핏은 전 재산의 85%인 440억 달러의 주식을 사회에 기부했고, 빌게이츠는 500억 달러의 재산 중 자녀들을 위해선 1000만 달러만 남기고 모두 사회사업에 내놓기로 했다.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하면서 사회에서 돈을 벌 때는 악착같았던 기업가들이 성공한 다음에는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환원하는 것이 미국의 기업가 정신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활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흉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민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분배한 거상 김만덕,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나눔을 실천하여 민란이 치열했던 19세기에 화를 입지 않은 경주 최부자집,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 등 이외도 많은 사례가 있다.

또한 근래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후보자 토론회, 장관 청문회 등에서 병역의 의무에 대한 검증이 필수 매뉴얼이 됐다. 권한이 주어지면 당연히 의무를 다해야 한다. 영국에서 주로 사회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중 무려 2000여명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사했다. 앤드류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가장 위험한 항공모함의 전투헬기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중 미국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했고 그중 35명이 전사했거나 전상을 당했다.?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층의 병역이행율은 일반 국민의 평균율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북유럽이나 미국처럼 선진국으로 갈수록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노블레스오블리주의 실천율이 높고, 후진국으로 갈수록 사회지도층의 부패지수가 높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사회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