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 전경. 충남 태안군 제공
백화산 전경. 충남 태안군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백화산은 태안 1경으로 손꼽힌다.

태안읍 시가지와 연결되는 휴식 공간인 백화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태을암, 흥주사, 마애삼존불 등 다양한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태안군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높이 284m인 백화산은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하다고 해 이름 붙여졌다.

백화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읍 북쪽 3리 지점에 있는데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 군 북쪽 13리 지점에 또 백화산이 있는데, 역시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두 산이 유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산에는 봉수가 있었는데, 동쪽으로는 서산시의 북산(北山)과 호응하고, 남쪽으로는 서산시의 도비산과 호응했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금북정맥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이 팔봉산(326m)에 이어지고, 다시 백화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진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기암괴석과 소나무의 어울림이 좋다.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태안 최고의 경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문리 쪽에서 백화산을 오르게 되면 태을암을 만나게 되는데, 태을암에는 백제의 보물이라 여겨지는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솔향기길 5코스가 지나가기 때문에 도보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

백화산 냉천골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유지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찾았던 곳이다.

산이 높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백화산성과 정상. 충남 태안군 제공
백화산성과 정상. 충남 태안군 제공

◆ 역사적 인물 및 사건

태안 백화산 산기슭에는 동학농민군들이 무참하게 살해돼 천추의 한이 서려 있는 갑오동학 농민혁명군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관군과 일본군의 패악과 횡포, 살상을 일삼는 만행에 의분을 참지 못한 태안 지역 동학농민군은 10월 15일 태안 읍내 경이정에 집결했다.

관군·유회군·일본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과 접전을 벌여 승리하고 당진을 거쳐 예산까지 나아가 또 한 번의 대격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10월 28일 애석하게도 최신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작전으로 무려 1,000여 명이 무참히 희생되고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태안으로 패퇴한 동학군은 백화산에서 마지막 항전을 한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면서도 항전을 계속했다.

비록 패잔병 신세로 궁지에 몰렸지만, 백화산 바위틈에서 은거하며 투항하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끝까지 저항해 장렬한 순국의 길을 택했고, 일부는 관군과 일본군에게 생포됐다.

관군과 일본군은 동학농민군 패잔병 포로들을 백화산 산기슭에서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을 했다.

마애삼존불. 충남 태안군 제공
마애삼존불. 충남 태안군 제공

◆ 문화유산

▲ 백화산성

태안읍 북쪽에 있는 백화산에 있는 산성이다.

충남 태안군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태안읍 뒤편 백화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서 만들었다.

산성은 해발 284m의 남쪽 봉우리와 해발 270m의 북쪽 봉우리를 돌로 에워싸면서 축조했다.

백화산 정상에 성벽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고려 충렬왕 13년(1286)에 쌓았다고 하는데, 원래 산성이 있던 곳을 고쳐 쌓았다는 의견도 있다.

산성 안에는 평평한 대지가 곳곳에 있어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자기 조각 등이 출토됐다.

특히 제법 많은 양이 출토된 기와 조각은 선조 무늬와 민무늬가 대부분이다.

백화 산성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쉬운 요새 같은 지형을 갖추고 있다. 태안읍에 있는 관아와 가깝고, 백화산 정상이 해발 284m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해안 해상교역로를 지키기 위해 태안반도 일대에 쌓은 성곽 중 제일 먼저 축성되었다고 한다. 고려말, 조선 초 서남해안에 창궐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 마애삼존불입상

백화산에서는 국보 제307호 마애삼존불입상을 만날 수 있다.

백화산 기슭에 들어선 마애삼존불은 자연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대표 불상이다.

백제의 화려했던 불교문화를 대변하는 조각임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도상을 하고 있어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거대한 바위의 동면(東面)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 배치와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이다.

더욱이 좌우의 불상은 큼직하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1보살(一菩薩)·2여래(二如來)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매우 특이한 도상이다.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의 불상에 익숙한 탓인지 강건한 얼굴, 당당한 신체와 묵중한 법의를 걸치고 있음에도 입가의 옅은 미소는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좌우의 불상은 기본적인 형태가 같다.

다만 오른쪽 불상의 얼굴이 뚜렷하고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왼쪽 불상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팽이 모양의 육계(肉髻)가 표현된 것이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과 비슷하다.

중앙의 보살은 기본적으로는 좌우 두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태을암. 충남 태안군 제공
태을암. 충남 태안군 제공

▲ 태을암

태을암은 조선시대 경상도 의성현의 태일전을 이건한 암자다.

태을암(太乙庵)의 창건주와 창건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 경상도 의성현(義城縣)에 있는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태안읍 백화산으로 옮겨오면서 태을암을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태을암’이란 명칭은 단군(檀君) 영정을 모신 태일전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지만 문헌상의 기록은 없다. 경북 의성에 있던 태일전을 충남 태안 지역으로 옮겨온 이유는 민생의 안전과 평안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재 태일전은 없고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있는 위쪽 약 200m 지점에 그 터만 남아있다. 1962년 10월 1일 전통 사찰 제40호로 등록됐다. 절의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소형의 석가여래를 배열하고 있다. 태을암의 동쪽 약 50m 지점에 자리한 백제시대의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이 있다.

백화산 해맞이 행사. 충남 태안군 제공
백화산 해맞이 행사. 충남 태안군 제공

◆추천 등산코스

1 코스 : 태안초교 - 백화산체육공원 - 교장바위 - 쉰질바위 조망안내판 - 낙조봉 - 태을암 - 정상 - 바위능선 - 태안군민체육관 (3시간 소요)

2 코스 : 샘골가든 - 약수터 - 소성바윗길 - 정상 - 태을암 - 낙조봉 - 태안초교(약 3.7km, 약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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