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소장

근간에 자주 회자되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의 의미는 국내 지방대의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경쟁력에 있어 취약한 지방 소재 대학교의 적지 않은 수의 인문사회 분야 학과들이 통폐합 과정을 거치고 있거나 정원 및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해당 학교의 전공학과의 운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대학 연구소의 존재 및 활동은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며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만들어 나가고자 정진하는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세기 말 소련 체제의 붕괴로 인해 국제사회뿐 아니라 국내에도 큰 변화가 발생했다. 오랜 기간 닫혀있던 ‘미지’의 세계가 열리자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폭되었으며, 이를 반영하듯 수도권을 비롯한 지방의 수많은 대학교에 관련 학과들과 연구소들이 개설 및 창설됐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역시 전공학과인 러시아학과를 배경으로 1996년 출범했다.

연구소는 시작 시점부터 국내의 유사 연구기관과는 다소 차별화된 방향성과 목적을 지향했다. 당시 국내 대학교의 유관 학과와 연구소들의 주된 관심은 모스크바를 비롯한 유럽러시아 지역이었다. 연구소 명칭에 표기되어 있듯이 당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지역 너머에 있던 시베리아라는 연구 공간을 창출해 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시베리아 연구기관이라는 자랑스러운 영예를 확보하게 됐으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국내에서 시베리아 지역 연구에 있어 거의 독점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지금까지 연구소의 연구환경이 결코 순탄하게만 유지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위기의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와 함께 광풍처럼 몰아쳤던 국내의 러시아 열기는 냉각됐고, 여기에 러시아 관련학과가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가는 현실은 국내 학계와 연구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 주었다. 이후 수도권 대학들은 새로운 연구영역 확보 차원에서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계인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집중적으로 전개했다. 당연히 그 여파는 선도적이고 거의 독보적인 연구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던 우리 연구소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적자원의 확보와 유지가 어렵고 정성과 정량적 연구환경에 있어 열세를 체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대학 연구기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존의 연구환경을 배경으로 새로운 연구환경을 창출해 냈고, 당시로서는 국내 최초라 할 수 있는 러시아의 만연한 부정부패 현상인 ‘러시아마피야현상’이라는 과제를 발굴하여 한국연구재단의 후원 아래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연구소는 언제나 기존연구를 토대로 경쟁우위에서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연구 아이템과 영역을 창출하여 이런 도전들을 극복해내며 시기와 장소에 걸맞은 새로운 학문의 꽃을 피워 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는 기쁨도 맞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등재학술지 『한국 시베리아연구』가 2021년 기준 한국연구재단의 영향력 지수 지역학 부문 54개 학술지 중 1위에 등극하는 영예를 얻었다. 그리고 2019년부터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새롭게 창출해 낸 탐구영역인 ‘북극권’에 관한 연구를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연구소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극지연구소 등 주요 국책연구소들과 함께 경제적으로 포화상태인 한반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북극’과 연관된 협력 사업들을 활발히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 COVID-19 지속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 영역에 있어 러시아가 중요한 대상인 우리 연구소 역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절박함이 척박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우리이기에 이 상황 역시 잘 대처해 나가리라 기대하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춥게 느껴지는 시절은 봄이 오기 바로 전’이라고 한다.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방 소재 대학연구소라는 척박한 땅에 학문의 꽃이 만개할 수 있는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로운 씨앗을 뿌려 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