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탁 충북도의원

지난해 6월 영국 킹스컬리지가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갈등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28개국, 2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에서 한국은 12개 갈등 항목 중 정치이념을 비롯한 무려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서도 국민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그야말로 자타가 두루 공인한 갈등공화국인 셈이다.

본래 ‘갈등(葛藤)’은 일이나 사정이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하는 모양새를 이르는 말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덩굴을 휘감아 올라가는 습성을 가진 칡(葛)넝쿨과 등나무(藤)가 한데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갈등을 제거해야 할 일종의 병(病)으로 인식하는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갈등을 해결 및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변화와 발전을 촉진하는 순기능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다만, 갈등의 긍정적인 면이 드러나려면, 타협과 화해를 통해 상생(相生)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당사자들의 자세와 의지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2014년 이래 KTX세종역 신설 논란은 충청권 내 분열을 일으키는 단골 공약으로 선거철마다 반복적으로 소환됐다. 지난 정부는 2017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KTX세종역 신설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이 0.59로 확인되어 경제성이 대단히 낮다는 이유에서다. 정거장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부본선 설치도 불가능해 안정성이 매우 취약하고, 인접역인 충북 KTX오송역과 충남 KTX공주역의 수요 감소에 따른 지역갈등 발생도 우려된다는 논거를 덧붙였다. 2022년 새 정부도 여전히 낮은 경제성과 열차운행 효율성 등을 고려해 역 신설 불가의 입장을 재차 표명하였다.

그런데도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도 지역갈등을 자극하는 KTX세종역 공약이 다시 등장했고, 최민호 신임 세종시장은 불과 며칠 전에도 본격적인 역 신설 추진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실익없는 지역 간 반목과 갈등을 재연하고 있다.

충청권 메가시티 및 광역철도망 구축을 비롯해 2027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공동유치 등 충청권이 협력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시점에, 반대를 위한 반대, 수용과 승복이 없는 고집, 무시와 불신으로 점철된 대립양상이 계속 이어지면 갈등은 그저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변한다. 충청권역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이때, 이미 매듭지어진 해묵은 논쟁거리를 반복해 등장시키는 것은 소모적인 갈등과 분열을 야기함으로써 충청권 전체의 성장동력을 저해하고 충청권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사 현수막 문구다. 화합과 지역발전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힌 새 정부의 목표에 발맞춰 충청권 역시 전역이 합심하여 화합의 정신을 구현해야 할 때다. 지나간 갈등은 떠나보내고 대승적 차원에서 통합과 발전의 충청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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