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K-팝,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한국이 만들고 전 세계가 즐기는 K-콘텐츠가 세계적 주류로 편입되고 있다. 이쯤 되면 ‘황금의 K-세대’라고 할 만 하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 문화가 압도적이었는데, 이제 일본은 한국이 무섭다며 부러움과 질투의 속내를 내비친다. 한한령과 문화 통제로 수년 째 한국 콘텐츠를 접하기 어려운 중국조차 한류와 같은 작품을 왜 중국인들은 만들지 못하는지 한탄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배움에 대한 각기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영어로 Study(배움)는 일본에서는 벤쿄·면강, 중국은 슈에시·학습, 한국은 工夫(공부)와 같은 의미다. 일본의 벤쿄는 ‘기분 내키지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다’이고, 중국의 슈에시는 글자 그대로 ‘학습하다’다. 그런데 한국의 공부는 그 의미가 복잡하다. 국어사전에서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을 뜻하지만 일본 사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궁리함’이라는 뜻이며, 중국에서는 쿵푸(功夫)로 읽히면서 ‘어떤 경지에 오른 기술’ 혹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기술’을 의미한다. 불교적 의미로는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노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각국의 특징을 보면 공부, 벤쿄, 슈에스 단어가 연상된다. 한국은 팬데믹을 이겨내기 위해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고, 자발적 거리두기, 마스크 생산과 착용, 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개발, 적극적인 백신 투여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며 궁리를 했다. 일본의 팬데믹 대책을 평가하자면 그야말로 무리를 해서라도 노력하며 힘쓰라는 벤쿄를 하고 이외에는 특별한 게 없다. 한술 더 나가 중국은 팬데믹 정책을 학습시키고 감시와 통제로 일관했다.

동아시아 삼국의 국민성과 철학이 다른 이유는 배움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일본과 중국이 K-콘텐츠를 부러워하면서도 한국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과거 10년 전까지만 해도 분업화 사회였다. 인간의 이해력과 독창성보다는 분업화에 자신의 능력을 최적화시켜야 했다. 표준화된 작업을 잘 이해하고 힘써 일하는 일본의 벤쿄가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고, 분업이 더욱 고도화됨에 따라 중국의 학습이 성장을 이끌었다. 지금은 분업화 시대의 끝자락, 단순 노동은 소멸되고 창의성과 독창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남의 것을 단순히 익히는 일이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중국의 학습,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해내는 벤쿄 수준으로는 완고한 인식의 틀을 깨뜨리는 창의성이 나올 리 만무하다. 시간을 들여 궁리하고 연구하는 공부에서 K-콘텐츠 같은 창의가 나온다. 한국만이 유독 요상한 자형인 ‘工夫(공부)’를 가지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시장에 만들어내고, 시장의 혁신자가 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공부가 될 것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혜안이었다. 공부가 대세가 되는 세상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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