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 건너편에서 바라본 부소산 전경. 충남 부여군 제공
낙화암 건너편에서 바라본 부소산 전경. 충남 부여군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扶蘇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다. 평지에서 돌출했으며,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아 있다.

부소산은 비교적 완만한 산세로서 마을 뒷산을 산책하듯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곳이며, 거닐고 쉴 만한 울창하고도 아름다운 숲길이 기다리고 있어 가족, 연인 등과 함께 트래킹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또 부소산은 계절마다 갖가지 매력이 담겨 있다. 봄에는 벚꽃, 진달래, 철쭉이 반겨주고 여름에는 짙은 산림욕을 할 수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기도 하다.

노을 질 무렵 부소산에 내리는 저녁비, 낙화암에 우는 애달픈 소쩍새의 울음,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푸른 백마강에 잠긴 달빛은 여기 사람들만 아는 색다른 부소산의 비경이다.

산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처음 보인다. ‘부소(扶蘇)’라는 뜻은 백제시대 언어인데 ‘소나무(松)’라는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여의 진산(鎭山)이며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라 부르고, 서쪽을 송월대라 이른다”라고 전한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 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했으며, 전시에는 사비도성의 배후이자 최후 보루가 됐던 곳이다. 백제인들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애잔함마저 간직한 명산으로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주검으로 절개를 바꾼 낙화암과 백제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천년 고찰 고란사가 유명하다.

부소산 부여현 관아. 충남 부여군 제공
부소산 부여현 관아. 충남 부여군 제공

◆ 역사적 인물 및 사건

부소산 입구에서 우측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사비백제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삼충사를 볼 수 있다.

의자왕 때 좌평을 지냈으며 성충은 왕에게 직언하다가 노여움을 사 투옥돼 죽었다. 흥수는 나당연합군 침입을 경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계백은 5000명 결사대로 신라에 맞서다가 황산벌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지금 삼충사가 들어선 곳에는 일제의 괴상망측한 건축물이 들어설 뻔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총독부가 ‘부여신궁’을 지으려 한 것이다. 신민화 작업을 위한 일제의 수작이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부여신궁 공사 도중에 청동정병, 청동접시 등 청동제 유물 30여 점이 나오기도 했다.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충남 부여군 제공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충남 부여군 제공

◆ 문화유산

부소산에는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 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 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부소산성은 2015년 관북리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1980년부터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됐다. 30년이 넘는 장기간의 계획적인 고고학적 조사 결과, 대형 건물지 등 왕궁의 주요 시설들과 정교하게 판축 된 토성이 확인돼 백제의 왕성 구조를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낙화암은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이른다.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낙화암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삼천궁녀 이야기는 조선시대 들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낙화암에서 내려가면 백마강에 면한 고란사가 나온다. 고려 때 창건된 고란사에는 금실 좋은 노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한다.

부소산 동쪽에는 영월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백제왕들이 해와 달을 맞이하며 국정을 논했다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영일루는 홍산면 조선시대 관아 문루로 사용되던 것을 1964년 영월대 터로 이전한 것이다.

또 부소산 정상에는 사자루를 만날 수 있다. 1824년 임천군수 심노승이 임천면 관아 정문에 세운 누각을 1919년 부소산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백마강에 잠기는 달과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소산 단풍. 충남 부여군 제공
부소산 단풍. 충남 부여군 제공

◆ 설화

▲ 신록의 아름다움 ‘태자골 숲길’

태자골 숲길은 옛 백제 왕자들의 산책로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곳은 봄이면 새순의 싱그러움을,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과 백마강 바람을 끌어안고, 가을이면 오새낙엽을 헤아려보고, 겨울이면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 약수가 있는 태자천의 흙길은 맨발로 걸어보면서 백제의 지혜와 기를 받을 수 있는 숲길이다.

▲ 전설을 찾아서 ‘고란약수이야기’

부여 부소산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에는 갓난아기가 된 할아버지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실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이에 다음 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했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할머니는 다음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갔다. 그러나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남편의 옷에 누워있는 모습에 할머니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할머니의 머리에 도사의 말이 스쳤다.

한 잔을 마시면 삼 년이 젊어진다는 것. 할머니는 이 말을 남편에게 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다.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부소산 부여현 관아 외부 전경. 충남 부여군 제공
부소산 부여현 관아 외부 전경. 충남 부여군 제공

◆ 추천코스

1 코스 : 삼충사 - 영일루 - 군창지 - 태자골 - 사자루 - 낙화암 - 고란사 (약 2.5km, 2시간 소요)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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