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본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전공 교수

소나기와 불볕더위가 양보 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요즈음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 불쾌 지수가 높아서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괜한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날씨와 관련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산이나 바다를 찾는 방법도 있겠지만 휴가 계획은 요원하다. 차선책으로 가까운 축구장이나 야구장도 좋을 듯한데, 직접 경기장을 찾기에도 날씨가 해괴하니 마땅한 대안도 아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선풍기 바람 아래 널브러져 시원한 음료 한 잔과 함께 TV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 이런 방법이라도 있으니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위안이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2022년 프로야구 전반기가 14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 환경이 개선되어 선수와 관중이 호흡하면서 시작된 프로야구의 관중 수는 코로나 이전의 2019년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예견된 성적표지만 "요즘 들어 프로야구가 예전에 비해 참 재미없다"고 한 말들이 새삼 기억된다. 팀 간의 벌어진 게임차, 좋아하는 팀의 성적 저조, 스타 선수의 부재 등 갈수록 박진감도 떨어진다.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과거와 다르게 경기장에 ‘라이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각 분야의 전성기는 라이벌, 즉 ‘맞수’의 존재가 많을수록 흥(興)했음을 알 수 있다. 70년대 고교야구도 그랬고, 프로복싱, 프로레슬링도 그랬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라이벌의 의미는 "같은 목적과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려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해석하면 치열하게 경쟁하여 승부를 겨루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때론 동업자로 함께 공생하는 관계인 것이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과 예측 불가능한 결과,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자극적 매개체’인 라이벌이 있었기에 재미라는 것이 배가 되어왔다.

물론 롤러코스트와 같은 짜릿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라이벌전을 통해 흥에 겨웠고, 시대의 영웅도 만날 수 있었다.

해외에서는 안드레 애거시와 피트 샘프라스(테니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권투),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축구),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농구) 등이 있었고,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김응용과 김성근, 선동렬과 최동원, 양준혁과 이종범 등이 라이벌로 기억된다. 그 시절의 스포츠 경기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겨둔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의 국립대학이 시끄럽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의 개정으로 총장을 선발하려면 "교원, 직원 및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선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 구성원의 비율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선거를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시대가 변하였고, 세상이 바뀌었다. 소통과 상호존중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대학의 발전과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라는 대의를 위해 ‘라이벌 다움’을 발휘했으면 한다. 라이벌의 존재 이유는 합리적 경쟁이지, 적으로서의 불편한 관계는 아닐 것이다. 모두가 흥(興)할 수 있는 품격있는 라이벌전을 시원하게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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