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회 청주시 서원구 지역경제팀장

오늘날 아버지들은 너무도 자상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해지는 경향이다. 근래 들어 아내가 보는 ‘현재는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 중년의 아버지는 따듯한 가족관으로 현대의 아버지상을 잘 그려낸다. 그는 매일 그날의 하루를 모아 그날을 일기장에 쟁여 나간다.

그의 자식관과 가정관은 평범하나 행복한 가정의 대명사에 비교되는 모습으로 오래전 아버지와 내가 건너온 시간과는 어두운 명암으로 오버랩되면서 지금의 나와 아이들 관계를 비교하게 된다. 절대 비교는 의미가 없겠으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많은 시대가 지나더라도 불변하는 고귀한 마음은 변치 않는 소중한 산물이라 하겠다. 어느 날 중국연수를 떠나는 딸아이가 내민 책 한 권의 제목은 아버지의 일상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을 꺼내 집어 딸 자신과 연결고리를 만들어줌으로써 먼 훗날 부모와 함께 꺼내보는 ‘Daddy Book’이었다. "저를 낳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빠와 엄마의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에피소드는 어떤 게 있나요?" 등 평소 아이가 묻고 싶은 것들을 책으로 엮어 아빠가 가진 추억을 소환해 풀어가는 추억의 다이어리인 것이다.

일기 쓰듯 적어두었다가 아이가 다녀오면 돌려주어야 했다. 막혔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앞에 둔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멀게는 40년 전의 일을 소환하기에는 내 기억은 너무도 부실했으며 작은 퍼즐 몇 조각으로 그날의 그림 한 장을 완성한다는 건 나에게 고문이었다.

중간중간 몇 페이지는 채워 넣었지만 결국 1년 뒤 돌아온 아이에게 돌려주지는 못했다. 그랬다. 나의 기억은 분명하지 못했고 사실에 근거하지 못하였다. 1377년 직지의 역사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내 기억이 수십 년 전 그날을 증명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반면, 활자본에서 시작한 기록의 역사는 기억을 훨씬 능가하는 신뢰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구 찬란한 인류의 역사는 직지의 역사와 같이 기록문화에서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러한 기록의 중요성을 우리 일상에 녹여 실천하는 것이 미래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의무이다.

각자의 일을 기록하고 남기는 것은 언젠간 잊혀 갈 자신의 총명함으로 포장하지 말고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꼭 상기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금부터라도 아침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스케줄을 계획하는 것과 일과 마지막을 정리하는 다이어리를 통해 미래를 위한 오늘을 기록하는 루틴을 생활화하자. 우리는 직지의 후예이기에, 기억을 이기는 방법을 알기에 기록으로 작은 역사를 증명해 나가고 그 작은 기록이 청주의 역사가 될 것임을 잊지 말자. 언젠가는 당신의 기록이 한국사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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