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태고의 유전자’의 저자 뤽 부르긴은 태고 때부터 존재했지만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퇴화되어 잠들게 된 유전자(정크 DNA)가 있는데, 이 잠들어 있는 태고의 유전자를 깨우면 새로운 생명체로 변모할 수 있다는 가설을 폈다. 송어 알에 전기 자극을 줬더니 150여년 전 멸종됐던 더 크고 힘이 센 송어로 부화 됐다는 식이다. 진화과정에서 휴지 상태의 정보가 현재 유전자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다시 사용될 수 있다는 뤽 부르긴의 주장은 증명이 돼야 하겠지만, 세포의 환경이 유전자 조절에 관여한다는 현대적 유전자 개념을 예견한 것이다.

과거에는 DNA의 지령에 의해 생명현상이 발현된다고 믿었기에 노력이 유전자의 힘을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유전자보다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환경을 더 중요하게 본다. 일개미가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으면 여왕개미로 변하는데, 습득한 환경이 유전자의 힘을 변경해 타고난 기질을 바꾼 것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영화 킹스맨의 대사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잠들어 있는 유전자, 즉 정크 DNA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인간 게놈 중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부분은 겨우 4%, 나머지 96%는 유전 정보가 없어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DNA다. 하지만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 하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크 DNA는 유전학의 총아가 됐다. 침팬지와 인간 유전자가 99% 같지만 완전히 다른 종인 이유도, 사람 간 유전자가 0.1%밖에 차이가 없지만 외모와 질병 등이 천차만별인 것도 정크 DNA로 설명된다.

"모든 아이는 천재로 태어난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등이 했던 말로 유명하지만,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태고의 유전자’, 즉 진화 기억을 간직한 정크 DNA를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이를 깨우면서 누구나 천재다. 아인슈타인은 처음부터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 속에서 잠들어 있는 유전자를 깨우고 직관과 상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면서 천재가 된다. 앤더스 에릭슨이 말한 ‘일만 시간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 것으로, 잠들어 있는 유전자를 깨운다면 우리 모두 최고의 전문가도, 천재도 될 수 있다. 몸이 아픈 사람도 좋은 생활습관을 되찾는다면 잠들어 있던 좋은 유전자들이 깨어나 저절로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 ‘나’라는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 복합체는 진화의 과정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생존하면서 수십만 년 동안의 승리 경험을 정크 DNA에 저장해 놓은 존재다. 성공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존귀한 존재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이유도,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예인과 그 자녀의 붕어빵 외모를 보면서 유전자의 힘을 실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평생 삶 속에서의 힘은 타고난 4%의 유전자가 아니다. 잠들어 있는 96% 태고의 유전자다. 깨워보자. 환경을 바꿔 보자. 사람이 변할 것이며, 인간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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