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성 대전문화재단 전통진흥팀 차장

얼마 전 한 남성이 대전의 무형문화재를 소개하는 상설전시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어에 능숙했고 자신의 학생들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대전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주민이었다.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리플렛을 찾아보는 그의 모습은 그간 전시실을 방문했던 어떤 내국인 관람객보다도 진지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 로비를 서성이며 비치된 설명 자료들을 탐독하는 그를 보면서 최근 몇 년간의 다양성 관련 이슈들이 떠올랐다. 2018년 BBC가 다양성을 주제로 실시한 글로벌 서베이 결과, 2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용도 조사에서 한국은 26위를 기록하며 충격을 안겼다. 2019년에 대전의 외국인 비율이 2.3%를 넘어섰고 시는 이듬해인 2020년에 대전외국인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한다. 다양성 시대의 정책이 활성화되는 시기인 것이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으로서의 외국인을 만나고 관계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다. 외국인 거주 비율은 종종 해당 도시의 다양성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곤 하는데, 비단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태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역사적으로 예술과 예술가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포용력을 확장해 나가는데 기여해 왔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사회적 관습을 깨면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7000그루의 나무를 심기 시작한 요셉 보이스, 시장 상인들과 함께 살기를 시작했던 안양 석수시장의 스톤앤워터, 클래식한 문법으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타파한 메이플소프, 우리 사회 속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누적해 온 노순택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사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익숙하지 않은 존재와 마주하게 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는 예술가들의 이러한 활동은 사회 참여 예술, 커뮤니티 아트 등의 장르적 명칭을 득하기도 했다. 또한 해당 장르에 속하지 않더라도 예술가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사회와 공유하며 그 저변을 넓혀왔다.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이웃과 관계맺기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역량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달랐다. 다양성은 새로 취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가치인지 모른다. 내가 당신과 ‘다르다’는 사실은 서로를 갈라놓는 경계선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법칙인 것이다. 예술이 가진 포용과 관용의 힘을 우리 삶 속에 다시 한 번 심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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