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스웨덴의 한 글로벌 다국적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지명된 분이 있다. 재무담당최고책임자 자리였다. 그런데 문득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주주 이익 극대화는 그가 스톡홀름 경제대학에서 공부할 때 배웠던 ‘대기업 재무 담당자의 주요 동기’였다. 그런데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는 한 번도 주주의 이익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주주를 한 사람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저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그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 몇 해 만에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으쓱했는데, 정작 해온 일은 일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했었다. 이게 과연 ‘성공’일까?

최근에 읽은 한 베스트셀러에서 발췌해 오기는 했지만 아마 독자들도 살면서 이 책의 저자처럼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라고 자문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하는 일이 중소기업과 공공기술의 사업화 지원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이 분야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것인지 고민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한다. 중소기업이 기술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 소속기관의 연구인력 중에서 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인력들을 한 명이라도 더 파견 그들의 고충을 해소하고자 하고, 제품개발에 필요한 장비나 시험시설이 부족하다면 보유한 장비나 시험시설을 활용해 기업과 공동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비교적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시제품 제작 지원도 어떻게든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도와주려고 한다. 이제는 지원기업의 숫자도 제법 되고, 지원실적도 차곡차곡 쌓였다. 나름대로는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러던 중 수행하던 한 사업의 평가장에서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평가위원 중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한 해 동안 처음 제시했던 목표를 초과할 정도로 정말 많은 실적을 내셨는데, ‘중소기업의 성장과 공공기술의 사업화 성과 확산’이라는 최종 목표는 얼마나 달성하셨나요?" 나름 좋은 평가를 기대했던 차에 던져진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답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해왔던 모든 지원활동이 목표의 달성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기까지는 지원 시점과의 시간적 격차로 인해 지금 평가 시점에 판단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을 뿐, 중소기업의 기술사업화 및 성장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것은 ‘목표 그 자체’를 어떻게 달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의 제시가 부족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원 과정이 최종 지원목표를 대신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소개한 책의 저자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은 변화가 내게도 일어났다. 지원기능별로 기업의 수요에 단순 대응하던 것에서 최종 목표를 중심으로 하는 지원 형태로 체계를 완전히 재편성했다. 중소기업 기술사업화지원에 앞서 기업과의 사전협의를 통해 사업화하고자 하는 최종 제품과 서비스를 먼저 정했고, 이를 중심으로 필요한 인력과 시험, 장비, 시제품 제작 및 자금지원을 지속해서 상호 연결함으로써 기술사업화 전 과정을 일관되게 모니터링하고 성과로 확인될 수 있게 바꾸었다. 이제는 우리가 지원한 어떠한 기업에 대해서도 수행한 지원이 기술사업화 성과창출 마일스톤 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놀랍게도 지원기능별로 나누어져 있던 지원부서 간의 협력도 몰라보게 활성화되는 성과도 나타났다. 이게 모두 공동의 목표 아래에 기능이 정렬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혹시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서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한 번 더 물어보면 좋겠다. 설레는 새로운 시작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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