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어린 시절 기억나는 선생님들 중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분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도중에 아름다운 스토리가 담긴 명화를 자신이 체험한 것처럼 실감 나게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곤 하였다. 가장 기억나는 명화는 로보트 테일러, 비비안 리가 주연한 ‘애수’였다. 런던의 안개 낀 어느 저녁 워털루 브릿지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장교가 자신의 연인을 기억하는 장면이 있는데 안개 낀 템스 강변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만남, 전쟁으로 인한 이별, 비극적인 연인의 죽음 등을 기억하는 주인공의 괴로운 얼굴이 어린 가슴에 느껴졌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몇 십 년 후 런던을 방문하였을 때, 맨 먼저 찾아간 장소는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과 같이 알려진 명소가 아닌 워털루 브릿지였다. 그것도 안개 낀 저녁, 마치 주인공처럼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국어선생님의 이야기를 되살리며 다리를 건넜던 기억이 있다.

유명한 도시들마다 명소가 있는데 워털루 브릿지는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른 명소들처럼 역사성이 있는 유명한 건물, 수 세기에 걸쳐서 조성된 도시 광장, 문화적 이벤트가 있는 특별한 장소가 아닌, 런던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평범한 다리일 뿐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른바 ‘장소성을 창출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 달러 시대로 접어들어 가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고층 아파트 단지, 인공적인 녹지, 공감대 없는 조형물 등으로 대표되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도시설계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다소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마저도 워털루 브릿지처럼 우리 지역의 명소를 꼽으라면 1993년에 개최된 엑스포와 다리, 목척교가 전부 일 듯싶다.

어떤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지, 의미, 시간’의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첫째는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쉽게 기억될만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잘 디자인된 도시 공간일 수도 있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 인물, 역사의 현장이 우리들에게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의미 부여가 가능한 활동과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소가 설계되어야 한다. 도시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체험,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뇌리 속에 자연스럽게 장소와 기억이 연결된다. 세 번째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한 기억과 스토리들이 연결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는 장소, 이른바 ‘도시의 명소’가 된다. 앞서 말했던 워털루 브릿지와 같이 역사와 명화, 문화 활동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 지역만의 장소성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올 10월 개최되는 제7차 UCLG 총회에는 1,000개 이상의 지자체와 관련 단체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K-POP 공연도 준비되어 있고, 다양한 관련 이벤트와 국제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이번 UCLG 총회를 통해 우리 지역을 세계무대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기억 만들기’를 실천하는 도시의 명소가 꾸며지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스토리를 수반한 대전의 명소를 주민들의 노력과 관심을 모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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