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욱 충남대학교 대학원 과학기술정책 박사과정

오늘날 우리는 사계절 언제든 손쉽게 얼음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냉동기술이 보편화 되기 전엔 얼음은 겨울철 강과 호수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귀한 재화였다.

여름철 얼음은 일부 특권계층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재였다. 1806년 미국의 사업가 프레데릭 튜더는 이에 착안해 얼음을 팔면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고향 매사추세츠주에서 채취한 겨울 얼음을 무더운 서인도제도까지 실어 나르는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감행한다. 비록 항해 도중 많은 양의 얼음이 녹고 얼음을 처음 접해본 현지인들이 용도를 모르다 보니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는 얼음산업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튜더는 톱밥·쌀겨 등을 단열재로 활용해 얼음 손실률을 줄여나갔고 얼음채취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절단 장치를 개발했다. 그리고 영국·네덜란드 정부와 서인도제도에 대한 공급계약을 맺었으며 쿠바 아바나·인도 캘커타 등 수출대상지에 얼음창고를 지어 유통 플랫폼을 장악했다. 이후 튜더의 얼음회사는 큰 수익을 올렸다. 얼음산업은 미국경제에 있어 새로운 유망업종으로 떠올랐으며 다양한 경제활동이 파생됐다. 1870년대 후반에는 보스턴 지역에서만 14개 기업이 연간 70만 톤의 자연산 얼음을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모든 상품은 도입·성장·성숙·쇠퇴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마련이며 급진적 혁신은 외부자로부터 온다. 자연산 얼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음의 불확실한 공급과 높은 가격에 직면했던 더운 기후의 남부지역에서 새로운 혁신의 싹이 움텄다. 기계적 방법으로 얼음을 만드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 가운데 마침내 성공적인 인공얼음이 출현했다. 드디어 1868년 미국 뉴올리언즈에 최초의 얼음공장이 세워졌으며, 그곳에서 생산된 인공얼음은 자연산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됐다.

제빙기술 등장 초기만 해도 자연산 얼음은 품질의 상대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시장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미 자연산 얼음산업의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자연산 얼음을 채취하던 기존 기업들도 공정기술 개선 등을 통해 생산량을 높이고 단가를 낮추는 노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기계식 제빙기업과의 대결은 애초에 승산 없는 게임이었다. 기존 얼음채취 방식이 점진적 개선을 이루는 동안 새로운 기술인 제빙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이르러 얼음채취 산업과 얼음 무역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자 자연산 얼음을 밀어낸 새로운 얼음제조 기계들도 구식이 되고 말았다. 대신에 새로운 혁신제품인 전기냉장고가 등장해 훨씬 싼 가격으로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켜주게 됐다.

미국 얼음산업의 사례로부터 우리는 혁신과 실행능력으로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 시장을 선도해 온 우량기업이 열심히 고객의 요구에 대응했음에도 후발 주자의 기술에 시장지배력을 잠식당하고 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경영학의 구루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혁신가의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현재의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은 어느 시점에 진부한 것이 된다. 하지만 한 번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성공의 덫에 갇혀 기존 제품의 공정개선에 집착한 나머지 기술패러다임 변화에 둔감하게 된다. 결국 느림보이고 경직돼 있는 챔피언과 약삭빠른 도전자 간의 시합은 대부분 도전자의 승리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단기간에 패러다임을 바꿀 불연속적 기술변화가 매우 빠른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방과 공유,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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