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회 한서대학교 교수

백수의 왕 사자의 세계에서 수컷은 하루의 대부분 먹고 늘어지게 잠을 자는데 비해 암컷은 사냥이나 새끼를 키우는 등 무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한다. 사람은 어떤가? 필자의 부모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힘을 많이 쓰는 농사일을 주로 담당하셨고 어머니는 자잘한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지 않으셨나? 아니다, 농사일도 아버지만큼 하셨다. 어머니가 일을 곱빼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일요일. 아내와 대청호 주변으로 산책을 갔는데 아내가 그만 얼음을 헛디뎌 미끄러져 왼손 팔목이 부러졌다. 아내는 고통이 엄청난지 말도 못하고 신음 소리만 냈다. 차에 태워 정신없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일요일이라 수술이 불가해 임시 깁스만 하고 다음날 수부 클리닉으로 유명한 정형외과에서 수술 받았다.

팔목이 부러진 아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모든 집안일은 오롯이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게 내가 다 하겠으니 걱정말라고 호기롭게 장담은 했으나 아침밥 챙기기, 설거지, 청소, 빨래, 다시 점심 준비, 설거지, 시장 가기, 집안 정리, 또 저녁 준비, 설거지 등등 등 온갖 일거리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모든 생활이 집 안에서 이뤄지다 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음식이 맛있는지, 과일이 달콤한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일주일이 지나니 입술이 부르텄다. 아내에게 집안일이 참으로 힘 든다 하니 "이제야 내가 놀고먹는 사람이 아닌 줄 알겠지?"하고 핀잔 같은 대답을 했다.

요즘은 여성들도 고등교육을 받고 자아 성취를 위해 또, 남편 외벌이로만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버거워 보탬이 되고자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내 혼자서 집안일을 감당하기는 힘이 들 것이다. 오랜 시간 살림을 해온 주부는 익숙하여 요령이 생겨 초보 주부인 나처럼 힘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들이닥치는 집안일의 고단함이 오죽할까?

사고 후 몇 달이 지나고 아내가 깁스를 풀어서 나는 학교 부근 마트 여주인과 식당 여사장에게 그간 사정을 말하니 나를 위로해주기는커녕 한결같이 "교수님, 이제야 아내들이 평소 얼마나 힘든 줄 아셨겠네요. 앞으로 더 잘 하세요"라고 호통치듯 말한다.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 나시족(納西族) 자치구처럼 남편은 멋진 옷 입고 따뜻한 곳에서 햇볕을 쬐며 인생을 즐기면 된다는 남자에게는 천국 같은 곳도 있다 지만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기에 한국 남성들은 이곳의 사정에 맞춰 살아야 한다.

겨우 두어 달 집안일을 도맡아한 핑계로 유난을 떠는 것 같지만, 5월 가정의 달에 아내의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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