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빛 ETRI 지능형센서연구실 선임연구원

‘우린 돈보다 사랑이, 트로피보다 철학이, 중요한 건 평화·자유·사랑’ 인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나온 노래 ‘불협화음’의 가사다. 서바이벌 경연 도중, 가수 찬혁이 노래를 멈추고 무대에 등장해 이 가사를 멜로디에 실어 세상을 향해 외친다.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화제가 됐던 이 노래는 필자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찬혁은 상금과 트로피를 걸고 경쟁을 부추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시대 분위기를 비판하며,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필자가 주로하는 연구개발사업 역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닮은 점이 많다. 연구자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하고, 제안된 연구사업은 심사위원에 의해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다.

이러한 경쟁체제에 의해 우수한 연구성과들이 많이 나왔지만, 부작용도 생기게 마련이다. 유행과 예산을 좇는 연구가 많아지면서 고도의 지식축적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산업 연구개발이나, 도전적 과학기술 개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연구사업은 상위 몇 % 권위 있는 저널 게재, 세계 최고 수준의 수식어가 붙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수행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목표가 1등이 되는 순간, 우리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저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에 소개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최초로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 이야기다. 그들에겐 우리가 말하는 ‘성공의 레시피’라곤 전혀 없었다. 자금 또한 없었고, 그들의 팀에는 대졸자가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차이가 있다면 ‘왜’, 즉 목적,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비행기를 만들면, 그것이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믿었다. ‘왜’, 즉 신념을 함께한 라이트 형제와 그 팀은 피와 땀과 열정을 담아 일했고, 그리고 마침내 1903년 12월 17일 그들은 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쪽은 그저 돈과 1등이라는 타이틀을 좆아 일했고 최초의 타이틀을 빼앗기자 그 즉시 개발을 멈췄다. 이 일화는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일수록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필자는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이용해 촉감을 전송하는 ‘텔레햅틱’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더 사실적이고 풍부한 촉감을 재현하기 위해 매일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 연구 중인 텔레햅틱 기술이 우리 대한민국에, 더 나아가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해보곤 한다.

실제로 이러한 고민과 상상이 힘들고 어려운 연구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때가 많다. 또한 지금 내가 연구하고 있는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신념으로 연구에 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저성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필자는 ‘효율과 성능’보다 ‘신념과 철학’이 진정한 가치를 길러낼 수 있는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1등을 위한 연구보다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연구의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트로피보다 철학이 가치 있는 시대를 꿈꾸며 ‘우린 돈보다 신념이, 트로피보다 철학이, 중요한 건 호기심과 상상력’이라고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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