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공공연구기관이 기술개발만 잘하면 되지, 왜 기업을 설립해서 기술사업화까지 직접 해야 해?" 지금이야 이런 말이 당연시되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공공연구기관의 주요 역할은 국가산업발전을 위해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기술사업화에 대해서도 ‘지원은 하되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터에 몇몇 전문가 정책 그룹들이 ‘성공적인 기술사업화를 위해서는 공공연구기관들이 개발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는 데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을 한들 쉽게 수긍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다 2005년 1월 27일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도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공공연구기관에 의한 직접 기술사업화가 공공연구기관의 개발한 기술의 사업화 성공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공공연구기관과 기술이전 기업 사이의 기술적 격차를 해소할 최적의 해결책이라는 것에 구성원들이 일정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비로소 공공연구기관이 연구소기업 설립을 통해 기술사업화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발을 떼고 보니 법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고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과 공공연구기관이 개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연구소기업’을 직접 설립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었다.

통계를 보더라도 연구소기업 지정 첫해인 2006년에 공공연구기관이 설립한 연구소기업은 단 2개에 불과하다. 더 놀라운 점은 연구소기업으로 연도별 신규 지정되는 기업의 수가 한자리를 넘기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기간이 공공연구기관과 그곳에 소속된 연구원들에게는 반드시 거쳐 가야만 했던 필수코스처럼 보인다.

기술개발 외에는 잘하는 게 별로 없다고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기업설립을 통한 기술의 직접 사업화는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공공연구기관이나 연구자들이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기간에 그들은 연구소기업으로 나간 연구자들이 코스닥에 기업을 상장하는 것을 목격했고, 자신의 기술개발 능력 외에도 산·학·연·관의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가 성공적인 사업화를 위한 핵심적인 역량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일반 기업창업과 달리 공공연구기관이 연구소기업의 주주가 됨으로써 든든한 지원의 기반이 돼 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실제로 연구기관내 분위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연구소기업 설립 초창기만 하더라도 기술출자보다는 기술이전을 통한 당장의 기술료 수입을 선호하던 연구자들이 이제는 기술출자를 주저 없이 선택하는 것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연구개발특구 지정 확대에 따라 연구소기업 설립지역도 늘어나면서 2014년에는 연간 연구소기업 지정 건수가 전년도 8건에서 43건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 후로 한 해도 전년 대비 감소세 없이 증가해 2016년 이후부터는 연간 170개 이상, 2020년부터는 210개 이상의 연구소업이 새로 설립돼 지정되면서 2021년 3월 기준으로 연구소기업의 누적 지정 건수는 1,374개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연구소기업의 수가 1000여 개를 넘어서면서 연구소기업의 새로운 매력적인 요소가 추가되고 있다. 연구소기업 간 네트워크는 급속도로 확장됐고 연구소기업들끼리 멘토-멘티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자양분도 더욱 풍성해졌다.

게다가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소기업 설립자본금 기준도 상당히 유연해졌다. 이제는 공공연구기관이 연구소기업의 매력에 눈을 뜰 시간이다. 연구소기업을 둘러싼 조직, 인력, 네트워크에다 시중의 풍부한 투자자금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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