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진 변호사

얼마 전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 경부운하 건설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에서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후 위 사람이 경부운하 건설을 정식 대선공약으로 삼은 것인지 개인적인 의견의 피력에 불과한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인 언급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위 구상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상 철회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필자로서는 철회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므로 위 의사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 글을 쓴다.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의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국 어느 측면이든지 필요성과 경제성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외 환경문제, 기술적 가능 여부 등 논의되고 있는 제반 문제들은 위 필요성과 경제성 자체에 대한 다른 설명이거나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예로 들고 보면 위 두 곳 모두 운하 건설의 필요성과 경제성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정치적 이유 등 다른 동기가 없다면 동서고금의 역사(役事)가 그렇듯이 운하 또한 필요성과 경제성 두 요소에 의하여 건설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건설된 운하의 성공 여부 또한 위 두 요소에 의하여 판가름 날 것이다.

경부운하 또한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막상 필자는 경부운하 건설의 필요성과 경제성이 어느 정도에 해당될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차원 특히 계량화된 방법으로 제시할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막연하기는 하지만 아래에서 보는 몇 가지 측면의 비교를 통하여 경부운하는 필요성도 그 건설에 경제성도 없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과거 4대 하천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활발히 가동되었던 내륙 수운이 철도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현실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천을 통한 내륙 수운은 적어도 속도 면에서 육상교통수단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운하가 필요하기 위하여는 기존 하천을 통한 내륙 수운이 최소한 가동되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람선을 통한 관광의 수단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운하가 기껏 유람선이 다니는 관광 수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운하의 필요성과 경제성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방증에 해당된다. 관광을 목적으로 만리장성이 축조되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듯이 황포돛단배를 띄우기 위하여 운하를 건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한 건설될 바에야 경부운하보다는 모든 면에서 비교 우위가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경인운하가 우선 건설되어야 하지 않을까. 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역사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수도권의 물동량을 볼 때 경부운하보다는 경인운하가 좀 더 실현 가능하고 실질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위 점에서도 경부운하 건설은 한낱 정치적인 구호나 선전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비켜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계지도를 펴고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찾아보자. 위 두 운하는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태국과 말레이 반도 사이에 위치한 좁은 지협을 찾아보자. 안다만해와 시암만을 양 옆에 두고 있는 폭 40㎞ 정도의 크라지협이다. 과거부터 운하 건설이 논의되었지만 아직까지 운하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곳이다. 미얀마나 태국의 내부 사정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를 보자. 운하 건설보다는 오히려 있는 자연 하천에 다리를 놓아야 할 지형이 아닌가. 결론을 낼 때가 된 것같다. 경부운하 건설 구상을 밝힌 분은 경부운하 건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론화할 자신이 없다면 우물쭈물하기보다 오히려 이제라도 깨끗이 위 구상을 철회하는 것이 낫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심정에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지 위 사람을 비난하ㅋ거나 흠집을 낼 의사는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