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모두 차기정부에 바란다. 과학기술을 국정수행의 기반이 돼 달라고.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패권 전쟁의 시대니, 경제성장 동력이니, 외교국방이니 모두 첨단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역동의 시대에 과학기술 혁신전력을 국정과제 전면에 내세워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에 한 가지가 더하고 싶다. 바로 과학기술문화 즉, 과학문화다. 과학문화란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나 법률·생활·사상을 포한하는 모든 행동양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과학문화가 과학기술 발전의 정신적 문화적 기초가 되며,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찬란한 이슬람문화와 서양 기독교문화 모두 알고 보면 과학기술이 바탕이 됐다.

과학문화는 과학기술의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생산하는 소수의 전문가들은 우리는 과학기술자라고 하지만, 생산된 과학기술만으로 과학문화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일반 시민과 대중들이 과학기술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과학문화는 만들어지고 넓혀지고 즐기게 되고 문화로서 자리를 잡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19세기 중반에 ‘과학(science)’라는 말이 탄생하여 이전에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총칭인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를 대신하게 됐다. 바로 이때부터 탐구의 대상은 세분화되고 전문화돼 우리가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라고 부르는 과학의 분과들이 자리를 잡게 되고, 현대에 와서는 더욱 세분화 된다. 자연철학 시대에는 한 사람의 연구자가 자연 전체를 연구하는 한편 과학의 시대에는 한 분야만 연구하는 과학자가 생겨났으며 서로의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전문가 시대가 됐다. 이렇게 전문화된 과학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과학진흥’, ‘과학대중화’, ‘대중의 과학이해’, ‘과학참여’, ‘과학인식’, ‘과학커뮤니케이션’, ‘대중의 연구의 이해’등의 이해의 틀로 과학을 이해하는 문화적 현상인 과학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과학기술처 출범(1967년), 과학의 날 행사(1968년)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재건을 위한 과학문화가 태동됐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과학기술입국의 기반 조성을 위한 정부주도의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은 80년, 90년대의 과학기술 인재 육성에 중점을 둔 청소년 과학문화활동 강화로 이어졌고, 93년 대전엑스포와 97년 제1회 대한민국과학축전으로 정부주도 과학문화활동은 절정을 이루었다. 2000년대 이후는 국민의 과학기술 이해도 제고와 참여형 사업이 확대됐지만, 2002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과 2003년 과학기술문화 기본 5개년 계획이 마련돼 과학문화 확산 중장기 기반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 자체가 정치권 이슈에서 벗어나 있으니 과학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힘을 잃어가고 있다.

차기 정부에 바란다. 다음과 같이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과감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해 주길 기대한다.

첫째, 지역과 민간의 과학문화 인프라 및 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중심기능은 지자체의 몫이나 언제나 재정부담과 전문인력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항상 경제적 논리에 기재부만 쳐다보는 모양세다. 늘 발목잡는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철학적이고 장기적이고 가치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형 지역과학관은 늘었으나 지역별 여건과 수혜율 편차는 여전히 심한 상황이다.

둘째, 과학기술인들이 과학문화 활동에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인식변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자들은 과학문화 확산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과학문화 활동 참여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부족하다. 특히 시민들은 절반이상이 과학기술자들이 과학문화활동이 사회적 책무라고 인식하는 한편 정작 당사자인 연구자들은 25%만이 책무라고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연구개발 예산 내에 과학문화활동비의 편성과 용도를 규정해 노력하고 있으나 대부분 수행기관의 성과홍보나 행사 등에 사용되는 실정이다.

셋째, 과학문화 활동 전문가인 ‘과학커뮤니케이터’의 양성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소셜미디어, 동영상, 웹툰, 웹소설 플랫폼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과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한 이른바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은 과히 폭발적이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의 과학커뮤니케이터 활동은 매우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중장기 관점의 과학문화 활동 전략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제3차 과학기술문화 기본계획(2020년-2025년)을 수립하고 추진중에 있다. 과거 과학기술관련 정책들이 정치공학적으로 판단돼 유명무실해 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차기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과학기술은 보이는 것이지만 과학문화는 다분히 정신적이고 철학적이고 가치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과학기술은 실물을 만들어내지만, 과학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다. 과학기술은 편리함을 주지만, 과학문화는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과학문화가 중요하다. 차기정부가 눈에 보인 것 이상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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