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일본 정부가 니가타(新潟)현에 있는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하자,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아픈 역사를 외면한 채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하려는 시도로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배제하고 사도광산이 17세기 에도(江戶)시대 세계 최대 금광이었던 점만 부각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앞서 2015년 나가사키(長崎)현 소재 ‘군함도’(하시마·端島)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까지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외교부 근무시에 과거사 문제로 일 외무성측과 직접 교섭에 참가해보고, 유네스코 주최 문화재 관련 정부전문가 회의시 우리 정부 수석대표로 파리 소재 유네스코 회의장에서 일측 대표단과 설전을 벌여보기도 했던 경험에 비추어 일본 정부가 이 사안에 관한 우리 입장을 수용할 기대가능성이 낮고 도리어 한일 역사전쟁이 격화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는 지난 2018년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의 우리 반도체 소재 수출통제 등으로 지속되고 있는 경색된 한일관계에 어려움을 더하고 우리 신정부의 대일 정책의 운신을 제약할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관한 우리의 기본입장을 견지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사도광산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한일 양측의 대립을 극복하는 보편타당한 담론과 반성에 정초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가 1972년 세계유산협약을 제정해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문화와 자연을 보전하고 가꾸어 미래 세대에 전승하여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고자 세계유산목록을 운영하고 있지만 등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산의 의미에 관한 해석이, 예를 들어, 이스탄불 소재 소피아 사원의 경우 종교권에 따라 상이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에 관한 국제사회의 담론도 이를테면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 질서, 지식(기술)과 권력의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면 오늘날 국제질서의 일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얼마전에 북경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빙상경기에서 판정의 문제로 논란이 일었는데, 판정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술적 권력과 배제의 전횡으로 묘사되는 이러한 일방적 담론의 모습은 세계유산 분야에서도 유의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유산이라는 것은 일개 국가의 국경을 넘어 인류 보편의 탁월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이나 국가의 목소리만 그 의미를 규정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명확하다. 문화유산은 그 물질적 실체를 넘어 그것에 실존적으로 연관되었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당시 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고난과 희생은 타자화되고 소위 일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근대화라는 폭압적 담론이 보편적 문화 담당 기구인 유네스코에 의해 승인되는 것은 부당하다.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그의 실존철학에서 현존재로서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고 설파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사도광산의 역사적 의미가 제기되는 경우에 그 역사적 장에 던져진 조선인들의 실상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류역사의 장인 세계유산을 소외와 배제 없는 총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하도록 국제사회의 담론을 주도하는 문화외교와 그 기제가 필요하다. 하이데거도 세계 속의 인간에 관한 이해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해석이라고 한 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적 실존을 증거하는 세계유산의 해석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 심사기구인 세계유산위원회가 노정하는 참여국가들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내재적 한계를 넘어 전문적이면서도 균형잡힌 모습으로 지양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시도로 그 중요성이 제기된 세계유산에 관한 해석의 공정하며 전문적인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 문화재청의 주도와 외교부의 협력으로 2019년도 유네스코 총회는 우리나라 세종특별자치시에 세계유산의 해석을 담당하는 ‘세계유산해석 국제센터’(The International Centre for the Interpretation and Pres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Sites)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이 센터가 그간 설립 준비를 거쳐 세종시 보람동 소재 청사에 둥지를 트게 되었다. 금년 중에 우리 정부가 유네스코와 센터설립협정을 체결해 공식 출범하게 된다.

세계유산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된 가치와 의미를 수용해 해석의 원칙과 지침을 개발하고 국제사회의 해당 분야 네트웍과 능력을 강화하는 등 국제적 노력을 집약하게 될 이 센터는 유네스코 산하 기관으로서 해당 분야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활동과 그에 따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중심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세종특별자치시는 센터가 세계문화유산 정책의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시민들과 함께 각별한 관심으로 지원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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