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상 청주시체육회 사무국장

학교종이 땡땡땡. 동요의 한 소절이기도 하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 학교 종소리이다. 지난 설 연휴에는 시골집에서 얼마 안 떨어져 있는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녀왔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이곳이 초등학교 옛터라는 알림 표지석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교실 건물은 사라진 운동장에 홀로서서 문득 스쳐가는 잔상들을 생각하며 추억에 발을 담가본다.

코흘리개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하얀 손수건을 매달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지금이야 화장지 같은 위생용품이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변변한 위생용품이 없는 관계로 흐르는 코를 닦기 위한 손수건으로 기억된다.

초등하교 입학하던 해 중간에 개교를 했으니 입학해서 당분간은 임시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신설된 학교여서 담장도 없던 때라 삽과 괭이를 가지고 등교하여 야외수업 핑계로 학교 뒷산에서 노간주나무를 캐어 오는 것이 한동안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노간주나무는 잎이 가시처럼 생겨서 학교 담장 대용으로 울타리에 딱 좋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코스모스 꽃모종을 길러서 향우반별로 학교주변과 동네 진입로 도로변에 심었다. 등하교 시에는 물도 주고 잘 길러서 가을이면 도로변이 온통 코스모스 꽃물결로 가득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연분홍의 한들한들 거리는 코스모스 길이 눈에 선하다.

추석 다음날에는 여지없이 학교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다. 시골학교다 보니 별도로 음식을 장만할 필요도 없이 추석명절에 음식을 좀 더 많이 해 바리바리 챙겨 와서 온가족이 함께하는 운동회다. 또한 고향을 찾아온 일가친척 등 사람들이 북적 북적 할 때라 별도의 인원동원 없이도 인산인해의 그야말로 동네 화합잔치였다.

가을추수 시기의 농번기에는 가정실습이 있다.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어 주라는 휴가다. 실습 후 등교 시에는 논에 벼 타작을 한 후 이삭줍기를 해서 벼를 한 두되 씩 가져 오라는 숙제도 있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쌀 한 톨도 소중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겨울이면 교실에 난로를 피우기 위해 장작을 구해야만 했다. 우선 불쏘시개로 솔방울에 불을 붙이고 장작을 올려 불을 피운 다음 그 위에 석탄을 물로 적당히 반죽해 장작위에 올려놓고 구멍을 몇 개 내 놓으면 화력도 좋고 잘도 탄다. 지금의 연탄난로가 도입되기 전이다. 장작을 새끼 끈으로 묶어서 들고 등교하기도 했다.

개교와 분교장을 거쳐 폐교가 되어 교실은 어디가고 없고 아름드리 방울나무와 운동장엔 풀만 무성하게 자란 흔적만 있다. 한 학년이 남녀 60명 이내로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늘 아옹다옹하며 즐겁게 놀던 교정이다. 그때 같이 뛰놀던 옛 친구들은 코로나 상황에 잘 지내고 있겠지. 보고 싶다 친구들아. 어서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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