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초인(超人)’. 독일 철학자 니체가 정의한 인간의 지향점이다. 일반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인간을 의미하며, 오버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류사회에서 오버맨을 상징하는 것은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이다. 노벨상은 독창성을 바탕으로 인류의 한계를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했는가를 아주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독창성이 주요 기준으로 적용됨에 따라, 그동안 응용 연구 분야는 노벨상에 이름을 올리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지난해는 응용 연구분야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그 주인공은 지구 기후의 물리적 모델링과 변동성 정량화, 지구 온난화 예측의 정확도를 연구한 미국인 마나베와 독일인 하셀만이었다. 노벨상이 관례를 벗어나 기후변화 예측을 주제로 한 응용 연구분야에 주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기후·환경 변화가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이 됐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 극복은 전 지구적 화두로 떠올랐다. 2015년의 파리 기후변화 협정이, 2020년에 들어서 195개국에 구속력이 있는 보편적 합의로 확대되었다. 각 국가도 그린뉴딜로 대표되는 기후위기 대응 및 경제회복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 탄소중립 전환은 그동안 화석 에너지에 기반해 왔던 문명 구조 전반을 재구축할 정도의 각고의 변화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니체의 말대로 낡은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탄소중립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이다. 정확한 데이터와 실시간 측정으로 중복투자를 막고 낭비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 탄소중립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잡하고 예측불가한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는 애자일(Agile)도 필수적이다. 애자일을 위해서 데이터와 실시간에 기반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디지털 전환은 선행돼야 한다. 친환경 도시계획가인 얀 겔이 탄소중립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빅데이터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의 심층적인 자료인 딕데이터(Thick Data)도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K-water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애자일과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히는 AI와 디지털트윈 등의 기술을 하천관리와 댐 운영 등 주요 사업 전반에 접목하고 있다. 특히, 섬진강 유역을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하고, 디지털트윈에 기반한 스마트 정수장 구축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함께 소형 강우레이더와 AI 기술이 연계된 실시간 수재해 관리 플랫폼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들 사업은 향후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결정적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디지털 전환의 민간영역 확산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마켓플레이스 중심의 플랫폼 구축은 주요 전략이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에 스마트 물관리 패러다임을 확산·보급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자발적 탄소저감에 참여하는 가능성을 넓혀갈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는 P4G 정상회의에서 서울 선언문을 통해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할 것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2030년까지 탄소저감 목표량과 이행체계를 담은 구체적인 법안도 마련됐으며, 정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제 막 우리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출발선에 나섰다. 큰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일수록 일반적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니체의 오버맨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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