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우리는 광고간판과 현수막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멋진 새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는 어김없이 옥외광고 간판과 현수막으로 뒤덮인 상가건물이 있다. 초현대식으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계획한 세종시도 예외는 아니다. 새건축물인데 예쁘지가 않다. 회색빛 도심 속에 울긋불긋 광고간판들은 저녁이면 그대로 네온사인으로 돌변해 그 피로감은 절정에 이른다. 현수막은 어떤가? 아름다운 국립공원 입구에는 여지없이 각종 안내광고물 현수막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은 각종 부동산 투자를 유혹하는 현수막은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친구가 가는 곳마다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저게 뭐냐?’고 의아하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자국에서는 본적이 없어 생소한데다, 한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휘날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가슴이 묵직함으로 남아 있다. 합법 불법을 떠나서 넘쳐나는 광고간판이나 현수막은 이제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됐다. 현수막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공공성을 내세워 설치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불법현수막의 90%가 관공서나 정치현수막이었다고 밝힌 목포시는 대부분의 현수막이 사거리나 건널목에 설치돼 있어 자칫 대형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옥외광고 간판과 현수막에 얼마나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을까? 조사에 의하면 2018년 옥외광고시장은 3.4조원이었고, 이중 건물에 부착하는 광고 간판은 1.5조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회성인 현수막은 선거철이 되면 더욱 가관이다. 2018년도 지방선거에 13만개의 현수막이 걸렸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1천700여 톤의 현수막 쓰레기가 나왔다. 불행이도 이들 현수막의 재활용률은 각각 33.5%와 23.4%에 그쳤다. 폐현수막을 재활용해 울타리로 사용하고 있는 텃밭을 볼 때면 어렸을 적 텃밭에서 길러져 나온 탐스러운 오이와 상추, 배추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이 사라져 버린다.

이번 21대 대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 나올 현수막은 또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홍보해야하는 광고 수요는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고민되는 지점이다. 우선 광고 수요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등 대체 수단을 동원해 충족시킬 수 있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과 사회관계망(SNS) 등을 활용한 광고가 스마트폰 세대들에게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고는 이제 사회관계망 속 깊숙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옥외스크린은 도시의 현대미와 어우러지게 디자인하고 설치된다면 옥외 광고간판과 현수막의 난잡함과 미관을 헤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현수막은 이제 여야가 합의해 불법화하고 서로 걸지 않는 것이 어떤가? 과거와 달리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는 모바일 기기를 강력한 광고전달 매체로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비대면 방식으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 지정된 장소에 벽보를 붙이거나 선거공보물을 직접 개인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미관을 헤치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현수막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건물에 부착하는 광고간판의 자재를 친환경으로 바꾸고 그 크기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광고간판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건물자체와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장소의 공간적인 미학은 우리들의 시각적인 안정과 함께 정신적인 즐거움을 함께 줄 것이다. 우리는 매년 수많은 신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건설하는데 30년 전 도시와 똑같이 디자인하고 만들고 같은 방식으로 산다.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 디지털대전환시대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예쁜 도시와 건축물을 광고간판과 난삽한 현수막으로 가리고 살 것인가? 아파트 내 집안은 온갖 고급스런 자재와 디지털기기로 편리하고 예쁘게 살면서 언제까지나 한발자국 현관문 밖은 바꾸지 않고 살 것 인가? 모두가 함께 살아갈 공간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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