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빗줄기가 거세진다. 빗살에 작은 물방울이 생겼다가 모형을 잡지 못하고 사라진다. 무심코 자동차 유리창에 맺히고 사라지는 빗방울에 시선이 머문다. 자동차 와이퍼가 매몰차게 물방울을 밀어내지만, 신이 내린 빗줄기를 어찌 막으랴. 물방울은 유리창 표면에 일어난 생성과 소멸이 마치 인간사와 비슷하다.

물방울이 빗살에 맞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뒤이어 또 다른 물방울이 몸집을 키운다. 마치 실패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모습이다. 물방울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이 얼비친다. 우레를 동반한 태풍이 지나고 빗살이 부드러워지면, 물방울이 영롱하게 빛나듯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삶은 더욱 탄탄하고 강인해지리라.

미술관에서 본 물방울 그림이 떠오른다. 화가의 그림은 실재의 물방울보다 더 선명하여 실물만 같다. 마치 누군가 화선지에 물을 쏟아 놓은 듯 착각마저 이는 그림이다. 작가는 물방울에서 물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단다. 영롱한 물방울이 다시 모체인 빗살을 맞고 풍선처럼 터진다.

빗방울을 톺아보니 우리네 일상도 보인다. 인간의 삶도 매 순간 거칠고 세찬 빗살에 부딪히고 부서지며 생을 이어가지 않으랴. 나 또한, 크든 작든 나만의 모습을 지키고자 애쓰나 세상의 빗살은 그것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때론 삶을 지탱하는 마음마저 힘없이 무너지게도 하지만, 그것이 어찌 삶의 고난이라고만 할 수 있으랴. 세상의 빗살이 나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주변을 살피고 속도를 조절하라는 의미가 아니랴.

생에 고난이 없다면, 즐거움도 일상처럼 느껴져 감각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리라. 인간사 고민과 걱정거리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생의 빗살이 두렵다면, 삶은 흐르지 않는 웅덩이의 물과 다르지 않다. 생명이 살아 숨 쉬지 못하는 물은 어디에도 쓰임이 없지 않으랴. 하여 적당한 삶의 무게는 물을 흐르게 하는 힘이니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하늘빛이 수시로 변하듯 우리의 일상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세찬 빗살에 물방울이 터져 소멸하지만, 빗물이 없다면 빗방울의 생성도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으리라. 세찬 빗살을 맞아본 사람만이 빗살에 흐트러지지 않을 삶도 계획하지 않으랴. 빗살은 파괴의 대상이 아닌 생성의 모체임을 깨닫는다.

화가가 그린 물방울과 내가 본 빗방울은 같은 의미이리라. 세상에는 의미 없는 일은 없다. 고난의 흉터는 그에 마땅한 교훈도 일깨운다. 넘어져 다친 상처는 덧나지 않도록 다독이고 생의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와이퍼 작동을 멈춘다. 물방울이 사라진 유리창을 바라보니 창에 맺힌 물방울보다 더 영롱한 화선지 속 물방울 그림이 눈에 선하다. 나의 삶도 빗살에 스러지지 않고 영롱한 물방울처럼 다시 빛을 내고 일어서기를 기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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