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훈 충남연구원장

충남 논산에는 육군훈련소가 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신병 훈련을 위해 제2 육군훈련소로 창설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연무대란 친필 휘호를 내려 별칭으로 연무대 혹은 그냥 논산훈련소라고 불린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젊은이에게 입영은 인생에서 대사(大事)였다.

과거에는 입영 열차라는 게 있었다. 영장을 받으면 날짜에 맞추어 해당 지역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입영 열차를 타고 논산으로 향했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최백호의 ‘입영 전야’(1989)처럼, 입영 전날은 술과 노래, 그리고 헤어짐이 짓누르는 묵직함이 있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에는 주인공이 입영 열차를 타고 창밖의 여자 친구와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동안 따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었다. 혹시 여자 친구가 기다리지 못할까 이별하는 심정으로 입영 열차를 타던 시절이었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기다리지 말라고 한 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김민우의 ‘입영 열차 안에서’(1990)라는 곡도 인기였다.

1970년대 말, 가장 먼저 군대에 가게 된 친우가 입영 열차를 탈 때 얘기다. 많은 친구가 배웅을 나갔다. 눈물로 흠뻑 젖은 그의 여자 친구도 있었다. 키가 큰 친구가 그의 여자 친구를 번쩍 들어 열차 안에 있던 친우와 입맞춤을 시켰다. 멀어져 가는 기차 안에서 까까머리 친우가 울먹이면서 던진 마지막 고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훈아, 영미 신발 좀 주워 줘라’ 여자 친구의 하이힐이 벗겨져 선로에 떨어진 것이다. 3년이란 세월은 길었다. 그 여자 친구와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고 세월은 다른 모양새로 흘렀다. 에릭 클랩튼을 꿈꾸며 기타를 치던 그 친우는 아쉽게도 오래전에 작고했다. 입영은 이런 추억, 낭만과 애환의 이야기를 수없이 만들어 냈다. 그 중심에 논산훈련소가 있었다. 논산훈련소 창설 이후 70년이 지났다. 대략 900만 명이 넘는 장정들이 훈련소를 거쳐 갔다고 한다. 국방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에 논산훈련소만큼 큰 반향을 담고 있는 장소가 어디 또 있을까.

‘백제의 옛 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 넋이 지하에 혼연하니/ 웅장한 황산벌에 연무대 높이 섰고’ 육군훈련소가(歌)다. 논산과 계룡 일대는 삼국통일의 최후 전투가 벌어진 황산벌 전투의 정기가 이어져 오는 곳이다. 백제의 5천 결사대가 신라의 5만 군을 맞아 4번을 이기고 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전원이 전사했다. 계백 장군은 출정 전에 스스로 가족을 거두었다고 한다. 계백 장군의 충절과 기상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는 16세 어린 관창의 넋도 함께 서려 있다. 논산에 육군훈련소가 자리 잡고, 3군 본부가 이전하고 국방대학교가 옮겨 온 것은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우리 선조들의 기백과 정기가 살아 있고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인생과 영혼이 머문 곳이다. 역사적으로 연원이 있는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공약과 관련해서 충남의 실망감과 우려가 매우 크다. 그러나, 육사 이전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지역을 안배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쉽게 결정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육군사관학교는 대한민국 국방의 상징이다. ‘세계 최고의 사관학교’를 비전으로 ‘미래 전장을 주도하고 국가 방위에 헌신하는 정예 장교 육성’을 목표로 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전투와는 사뭇 다른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 로보틱스, 드론 등을 활용한 무인 전투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방산업과 관련한 첨단의 연구·교육 기반은 물론 교육환경 변화가 절실하다. 육군사관학교 혼자 동떨어져 존재해서는 이러한 미래 국방 수요에 부응할 수가 없다. 산학 협력은 물론 국방 관련 기관들의 연계 및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논산에는 육군훈련소, 국방대학원뿐만 아니라 육군항공학교도 있다. 인근에는 육군교육사령부와 같은 교육기관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항공우주연구원 등 국방의 핵심 연구기관들도 근접해 있다. 논산·계룡지역을 산학연이 함께하는 K-국방 클러스터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육사 이전은 대한민국 국방 안보와 육군사관학교의 기능 강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통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도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논산이 가장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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