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인가? 사전에서는 어른을 ‘다 자란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다 자라서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40세였던 조선시대에 40, 50세 이상 건강하게 살고 지혜를 터득했다면 어른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이가 들어 50세에 천명도 알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시대에 50세 이상 사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중위연령은 43.7세, 10년 후엔 천명을 안다는 50세가 중위연령이 되면서 나이로만 따지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천명을 아는 어른이다. 하지만 철들지 않는 어른이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 현상인데, 이는 멀티 페르소나, 부캐(부캐릭터)의 시대로 진입하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4050세대가 적응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멀티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Persona)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유산슬(트로트 가수)이라는 부캐로 활동하는 것처럼,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에 맞춰 여러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 외적 인격을 갖는 다중적 자아를 말한다. 보통은 한 우물 파며 죽기 살기로 덤비는데, 멀티 페르소나는 자신의 주 역할을 지키면서 여러 개의 우물을 파서 논다. 올인하지 않고 스스로 궁지에 몰지 않으면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부캐의 나날인 것이다. 사실 이런 멀티 페르소나의 삶은 과거 르네상스 시대 교양인의 보편적인 삶이었다. 나이팅게일 하면 간호사를 떠올리지만 그녀는 수학자였고 신학자였으며, 라이프니츠는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외교관이자 지질학자이자 사서였다. 이처럼 과거의 교양인은 멀티 페르소나 삶을 즐기면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고 지혜를 얻어 어른으로 성장했다.

현재의 우리는 분업의 효율성을 위해 누구든 오직 한 가지 일에만 평생 헌신하며 살아왔다. 그러하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교양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기에 역부족이고, 어른이라고 불리기엔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게 되었다. 사실 전문화되면 될수록 개인은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짧아진 지식의 반감기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한 우물만 파면 인간의 지적, 영적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어른이 되는 길이 어렵게 된다.

21세기 시대가 바뀌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멀티 페르소나, 부캐의 삶으로 회귀하고 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치과의사,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공학을 배워 IT를 연구하고 작가로 활동하는 대학교수, 공무원이지만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산악인처럼 부캐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의 주역이 될 2030세대는 특히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며 창의성을 사용하는 멀티 페르소나 삶을 살아야 한다. 임인년 새해, 멀티 페르소나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10~20년을 달려 보자. 모두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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