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사위가 너무 조용하다. 아니 적막하다 못해 황량하다. 암만 둘러봐도 사방이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외딴섬에 철저히 혼자 남겨진 것이 틀림없다. 손만 뻗으면 어디서든 다 통(通) 할 수 있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처지에 두려움이 훅 몰려온다. 휴대전화기가 망가졌다. 소통(疏通)의 도구만이 아닌 분신처럼 긴 시간을 함께해온 행적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예고도 없이 툭 하니 꺼져버리는 순간 나는 적막강산에 떨구어져 고독하고 한심한 사고의 수렁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시시각각 활발하게 요동치던 그 많던 연락처와 정보들과 파도처럼 출렁대며 역동하던 일상들이 일순간에 멈추어 꼼짝할 수가 없다.

내게 있어 전화기를 소통의 도구로만 쓰이던 단순한 기기라 칭한다면 그건 너무 약한 비약이고 더 심하게 말하자면 배은망덕인지도 모르겠다. 전화기의 창만 열면 생활의 사통팔달이 되어 지름길을 안내하고 추억도 저장하여 가끔씩 꺼내 유추할 수 있는 벗인 양 내 생활의 자리매김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여태껏 살아왔기에.

서점에서 원하던 책 한 권을 찾아내 가슴에 품고 오는 내내 설레고 푸근했던 그 행복감 대신 손가락만 갖다 대면 온갖 책들이 즐비한 가운데서 이것저것 쉽게 탐색하는 재미도 얻었었다. 책을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듣는 편리함을 택했을 땐 신세계를 만난듯했다. 그뿐인가. 책상 곳곳에 자리하던 자질구레한 쪼가리 메모장과 새해가 되면 집안 대소사와 연중 계획을 빼곡히 적어놓은 달력도 필요 없어졌다. 때가 되면 친절하게도 알람을 해주는 만능의 전화기가 내겐 있었으니까.

전화기의 기능이 꺼지는 순간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아니, 편리해진 문명의 늪에 빠져 그동안의 나태와 자만을 심판받는 느낌이었다면 허풍일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 연락처마저 단축번호로 저장하고 그 신통함이 영원하리라 칭송하며 살아온 대가로 전화기가 꺼지는 순간 혼란과 함께 확실하게 망가진 사고를 또렷이 인지할 수가 있었다. 만능기계라 믿었던 만큼 생각과 기억의 뇌 기능은 손바닥만큼 좁아지고 굳어져 기계에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돌아보는 아둔함을 어찌할까.

문명이 내 삶에 준 혜택이라 편리함을 감사하며 기기에 의지하여 사는 동안 신체의 기능들은 서서히 결박당하여 상실이란 늪에 가라앉고 있음을 왜 정녕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무엇이든 머릿속에 저장하며 감정까지 꼼꼼하게 기록하던 습관들을 언제부터 놓고 살았는지 그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다. 결국 문명의 편리한 기능의 깊고 깊은 늪에 침잠시키며 살아왔었나 보다.

새해가 밝았다. 나도 연륜의 테두리 하나를 더 둘렀으니 신체적 기능 또한 더 둔해지겠지. 진보에 무조건 발을 맞추려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보다는 좀은 느려도 다시 나답게 천천히 살아가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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