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미국영화가 상영됐다. 잭 니콜슨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 제목에서 주는 ‘두 번’ 내지 ‘두 개’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어떤 영화평론가는 인생은 무엇이든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계기와 시도로 만들어진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세상도 외눈이 아닌 두 개의 눈으로 보게 되어 있고,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남자와 여인, 온·오프(on·off)처럼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적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동양은 고대부터 주역의 음양 사상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해석해내는 세계관을 발전시켜왔다. 서양에서는 세기말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이항 대립적 관점에서 언어의 가치와 의미를 규정한 이래 20세기 구조주의 세계관을 열었다. 이후 상호 차이 즉, 다름을 인정하는 구조적인 바탕 하에 상호 보완적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이 서양에서도 나오게 됐다.

새해 벽두부터 세상은 미국과 중국 간의 향후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소위 ‘미중쟁패’가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리더십의 변화와 함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관심이 다대하다. 서구를 대표하는 미국과 동양의 거인 중국은 동양·서양이라는 이항 대립적 성격이 우리 삶의 현실적 구조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기원전 동양에는 진시황의 제국이 있었다면 서구에는 알렉산더 제국이 있어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거대 세력으로 등장한 이래 서로 겨루어볼 기회는 여태껏 없었다. 알렉산더의 오리엔트 원정은 인도에까지 이르렀지만 히말라야 거봉과 파미르 고원에 막혔던 것이다. 단절된 양 제국이 만날 일은 근대에까지 기다려야 했다. 애초 신생국 미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청나라)에 문호개방을 주창하며 진출을 추진했지만 비교적 동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미국의 우호적 태도는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거쳐 소련 봉쇄 및 중국의 개혁개방의 지지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이 경쟁하던 서구제국, 일본, 소련을 제치는데 중국 카드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미국 외교의 거목 키신저는 중국을 위대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로 설파했으며, 삼국지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응용해 미국·소련에 더해 중국을 끌어들였고, 미중 국교정상화 당시 중국의 주은래 수상은 고대 중국 왕권의 상징이었던 청동으로 만든 솥, 구정(九鼎)이 세 발이 있어야 설 수 있다는 비유로 중국이 세계 패권의 향배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1세기 들어 경제를 포함한 제반 분야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한 중국이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에 도전장을 내면서 숙명적으로 거대해질 수밖에 없는 중국과 서구의 대립은 앞으로 세계사의 가장 주요한 대목이 된 것이다.

미국·중국 이항대립적 상황은 이전 역사에서 보던 라이벌 제국들의 관계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화란, 프랑스, 영국 등의 경쟁과 이를 이어받은 미국, 미국의 경쟁상대이었던 소련은 기본적으로 서구문명에 포섭되지만, 중국은 기존의 라이벌들과는 상이하다. 판도는 어마어마하고 인구는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비록 맑시즘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자신의 사유와 가치 체계를 갖춘 수천년 지속된 고유문명을 보유한 지극히 이질적인 상대이기 때문이다. 거대 핵무장국인 미국과 중국이 상호확증파괴로 연결될 전쟁으로 승부를 가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구소련을 와해시킨 전략도 이미 거대경제권을 형성한 생산능력과 자원을 고려할 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중 경쟁은 오래 지속될 세계의 구조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21세기 고도로 발전된 정보통신과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은 이제 위대한 두 문명(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구조를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미 동양적 사고는 이원적 세계를 조화롭게 보완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미·중 경쟁을 파국적 결말로 보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 서구권도 자신들의 가치관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므로 경쟁과 협력을 주조로 한 이러한 구조는 정착되어 우리의 세계를 규정하는 기본적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것이다. 따라서 바로 미·중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미래는 미중간 경쟁과 협력에 적절히 참여하여 위대한 두 세계의 구조를 최대로 공유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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