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옥 논산양촌초등학교 교장

▲ 홍계옥 논산양촌초등학교 교장

내년 2022년이 되면 논산양촌초등학교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교표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내가 이 학교로 부임한지 3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야 이뤄진 일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양촌초가 개교한지 102년이 흘렀고, 사랑가득 넘치는 행복배움터의 새로운 얼굴을 맞이하게 되는 2022년도는 뭔가 감동이 있고 다시 100년을 잇는다는 엄중한 역사의 전환점이 될 거라는 설렘으로 기대가 된다.

학교현장에서는 교장이 바뀌면 화단에 심겨진 나무가 제대로 살아남질 못한다는 말이 있다. 즉 교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려, 또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고자 애꿎은 나무만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결국에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게 만드는 현실을 꼬집어 한 말이다. 사물의 성질이나 일의 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그대로 두거나 크게 일을 벌이지 않으면 될 것을, 없애고 바꾸는 것만이 능사라는 착각이 참사를 불러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말자는 신념이 확고한 편이다.

그랬던 내가 3년 전 개교 100주년이 되던 양촌초로 부임을 해서 학교현황판의 욱일기가 연상되는 교표를 보고 심각한 갈등과 고민에 빠졌다. 충남교육청에서 일제 잔재 청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양촌초에는 총동창회가 구성돼 있지 않았고, 개교 100년 된 역사 깊은 학교라는 사실이 큰 산의 무게로 다가와 교표를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작년에 실시된 교장연수에 참석해 ‘앞으로 5년 후에는 위안부 할머니뿐만 아니라, 친일행동자 조차도 생존해 있지 않게 되어 살아있는 역사자료가 모두 다 사라지게 되는데 후손들에게 역사교육 어떻게 시킬 것인가?’ 라는 큰 물음을 던진 강사의 강의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교표교체 활동이 그 이후 급물살을 타고 교육공동체의 의견수렴을 통해 교표교체를 추진하게 됐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감히 말 하건데 학교장의 인식차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알고 있다면 실천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다.

양촌초의 교표교체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전교 임원으로 구성된 학생자치회의에 안건으로 올려 토론을 실시한 결과 교표교체에 전원 찬성했다. 이러한 내용을 가정통신문으로 보내 학부모님의 의견수렴을 거쳤는데 90%이상이 찬성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이후 교표공모를 통해 새로운 교표 선정 과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다소 무거운 과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살펴보니 우리 학생들은 어른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미래를 표현해 줄 교표를 만들자’ 라는 한 방향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 이게 성숙된 민주시민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역사회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행복하게 초등학교 생활을 하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새로운 교표를 가지고 오늘도 ‘양촌 꿈동이들’은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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