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대전YWCA 회장

"올케, 잘 지내? 배추김치랑 알타리 한 통씩 해 놓았어. 시간 되면 가져가"

시골에 계신 형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 김장을 하셨구나. 그래 맞아 지금 김장철이지. 덜렁이 올케가 직장생활로 정신없는 것을 알고 있는 속 깊으신 형님께서 우리 몫까지 해 놓으신 게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파트 게시판에 절임배추 주문을 받는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고, 동네 마트에서도 김장거리를 판매한다는 메시지가 왔었건만 남의 일처럼 여기며 전혀 김장철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대비 재배면적이 줄었고 배추 뿌리가 썩는 ‘무름병’이 돌은 데다 가을장마와 기습 한파로 배추 산지의 피해가 커서 배추 가격이 올랐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언제 김장을 해야 하나 걱정을 아주 잠시만 하고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난 ‘김장족’이 아닌 ‘김포족(김장 포기족)’이 되어 김장에 무심해졌다고나 할까...

우리 집 김장에는 무관심해졌지만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첫 직장은 아동생활시설이었다. 수십 명의 아동들을 양육하다 보니 김장철이 되면 ‘접’단위로 김장을 하였다. 요즘은 한 가정이 20~30포기만 해도 넉넉하다고 하여 ‘접’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다. 배추 100포기가 한 접으로 30~40년 전 당시 김장철이면 일반 가정도 한 접은 넉히 김장을 하였고 내가 일하던 시설은 김장을 4~5접 하였다.

김장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씻는 것부터 시작이다. 배추와 무는 여러 날의 공을 들여 여기저기 시장조사를 한 후 사는데 떨어진 배춧잎도 얼마나 아까운지 다 거둬왔다. 사 온 배추와 무 등을 종일 다듬고 절인 후 다음 날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절인 배추를 씻기 시작하여 동이 틀 때야 겨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뜨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고 허기진 속을 덥힌 후 커다란 고무 다라에 채 썬 무와 파, 마늘, 젓국 등을 넣어 소를 만드는데 어린아이들이 먹을 거라 너무 매워도 안 되고 너무 짜도 안 되고 양념도 거의 넣지 않으면서 맛을 내야 하니 소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 고무 다라 안에 가득한 소를 버무리는 작업은 힘이 제일 좋은 내가 도맡았다. 그렇게 만든 소를 배추에 버무리는 사람, 항아리로 나르는 사람, 항아리에 담는 사람 등 각자 나눠진 일들을 분주히 하다 보면 산처럼 쌓였던 배추는 어느새 땅속 항아리로 다 들어가고 막 버무린 빨간 김치를 김이 나는 하얀 쌀밥에 얹어 먹는 점심으로 한 해의 김장을 마쳤다.

김장은 ‘겨울철의 반양식’이라는 말에 걸맞게 김장을 하고나면 아이들의 겨우살이를 준비한 거 같아 든든하고 뿌듯하였다. 최근 어려운 가정을 위해 다양한 김장봉사가 펼쳐지고 있다. 김치를 담그는 봉사자와 전달받는 가정들 모두가 따뜻하고 건강한 겨울을 보내길 조용히 기도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