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회 한서대 교수

얼마 전 할로윈 데이를 맞아 우리 젊은이들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방역규정도 무시하고 곳곳에서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이들은 왜 호박가면을 ‘우상’으로 하는 서양귀신축제에 광분할까?

우상은 우러러 숭배하는 상(像)이며 종교 정치 사회문화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고정된 상(想)이라할 수도 있다. 우상을 따르는 이들은 우상이 지시하는 대로 가치관을 설정해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그래서 기업이나 특정 단체들은 사회적으로 우상이 된 이를 내세워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려하고 이에 바보같이 따르는 소비자는 ‘호갱’이 되기도 한다.

할로윈과 대비해 최근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 열풍은 ‘대장금’, ‘태양의 후예’ 뒤를 이어 한국의 문화가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부심의 근거를 ‘외국에서 인정하니까’라는 해묵은 사대주의적 습성에 갇혀있음을 보일 때가 있다.

20여 년 전, 필자는 미국 버몬트에서 작은 상을 받게 돼 그곳에 가서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작품을 본 많은 미국작가들은 내게 “너의 (한국적) 작품세계를 잃지 말라”며 “미국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미국작가가 된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 역사에 만연했던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한국인의 자기비하 습성을 알고 있었다.

필자가 초등생이었던 6,70년대는 시골 학생들이 대거 도시로 유학을 갔다. 이들은 화려하고 낯선 도시문화에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되고 남루한 시골농부의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난 부모를 보고 ‘이 사람은 나의 집 머슴이다’라고 했다는 신파적 이야기는 흔한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어린 나이의 예민한 감수성이 과하게 반응한 것일 수 있지만 체면이나 외양을 중시하는 과거 위선의 유산에 찌든 어른들이 초래했다고 본다. 지금의 어른들도 입으로는 올곧은 선비의 자세를 내세우면서도 물질과 감각에 탐닉하고 정신적으로 타락했다는 모순의 증거는 정치, 종교 어느 곳이나 예외 없이 차고 넘친다.

수능이 끝나고 많은 젊은이들이 성형외과를 찾을지 모르겠다. 수술을 통해서 멀쩡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버리고 유행하는 우상을 본떠 변조된 모습에서 자아를 확인하는 기묘한 현상이 만연하는 작금의 풍조에 대해 개탄스럽다.

불경에는 ‘불취어상(不取於相)’, ‘여여부동(如如不動)’이란 경구가 있다. 내면의 욕망과 외부의 삿된 생각과 말들에 흔들리지 말고 바른 마음을 세우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우상을 추종하고 남의 말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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