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일곱 살 손주 녀석이 거실을 가로질러 달리자 막 걸음마를 터득한 작은 손주가 뒤뚱대며 뛰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어울림이 앙증스럽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이토록 호사스럽고 어떤 음악이 이토록 고운 소리를 낼까.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냥 취해있다 층간소음으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화들짝 놀라 아이들을 저지하면서도 마음 한켠은 짠했다.

"왜 할머니 집은 이렇게 넓은 거야?" 너희 집과 똑같다는 설명에도 도리질하며 할머니 집은 훨씬 넓단다. 녀석이 아파트 면적을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기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 아련한 기억이 나를 외갓집 넓은 마당으로 이끈다.

외갓집 마당은 참 넓고 컸다. 어린 눈에 비친 그곳은 세상 어느 곳에 비길 수 없을 만큼 광활했고 풍요했다. 그 마당에는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개구리를 닮은 청참외가 마당 한쪽 편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것도 꽃으로 둘러싸인 작은 연못 또한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소담한 연잎 사이로 연꽃 봉오리가 물 위로 떠 올랐고 밤새 달빛을 머금은 연꽃은 한낮 땡볕 아래서 우아하게 피어나 꽃 향으로 마당을 그윽하게 채웠다.

그곳에서는 하루에 몇 번씩 지나가는 기차도 볼 수 있었다. 밤이 이슥토록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다 설핏 잠이 들다가도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적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기차를 보려고 마당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긴 몸체를 구불거리며 달려오는 웅장하고 으스스한 그 모습도 외갓집 마당에서만 볼 수 있던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고무신과 횟대에 걸린 옥양목 의관의 주인인 외할아버지가 기거하시던 사랑방도 마당 동쪽에 있었다. 학 같은 모습으로 언제나 좌탁 앞에서 글을 읽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상투 튼 머리가 장지문에 어름 하니 비칠 때까지 뛰놀던 마당이었다.

두 분 모두 그 큰 마당에서 꽃상여를 타고 하늘길에 오르신 지도 수십 년이 지났고 삶의 흔적조차 미미해졌을 만큼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기억 속의 넓고 광활했던 마당을 마주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파 속에서 옛 모습을 잃기도 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넓디넓은 광활한 마당은 진정 아니었다. 손주를 향한 무한한 긍정과 관용이 천진함이 무한하게 척도를 키웠고 그 푸근했던 사랑의 부재와 상실 앞에서 비로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나 보다.

손주 녀석이 우리 집 거실을 보고 크다는 표현 또한 그러하리라.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하는 속박과 제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 할머니 품 안에서 무장 해제된 손주의 천진난만한 시각이 외갓집은 마냥 넓게만 보였으리. 내가 외할머니 품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비길 수 없을 만큼 풍요했고 크디큰 마당을 보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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