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경 지역아동센터대전지원단장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걷고 말을 배우는 발달 과정 가운데 남들보다 늦게 걷고, 말하는 아이들을 ‘늦되다’, ‘늦된 아이’라는 표현을 한다. 걷고 말하는 시기인 영유아기의 늦된 발달은 그 차이가 분명하게 눈에 띄어 치료 등을 통해 아이의 발달을 촉진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령기가 된 아동 발달에 대한 관심은 학업 성취도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령기의 늦된 아동은 ‘학습부진아’로 판단하고, 이에 따른 교과학습을 중심으로 한 지도 개입에 그치고 만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 경계선 지능)’라는 말이 있다. 보통 지적장애(IQ 70 이하)에 해당되지 않고, 평균 지능(IQ 85)보다는 낮은, 경계선의 지능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지능의 정규분포상 약 13.6%가 이에 해당한다고 하니 한 학급에 2~3명의 느린 학습자 아동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느린 학습자의 특성은 학습부진에만 있지 않다. 주의 집중의 어려움,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 부족, 감정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서투른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친구나 교사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학교에 진학했을 때 개별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학업적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위축, 무기력과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느린 학습자에 해당하는 학령기 아동을 학업평가에 따른 교과학습으로만 건강한 발달을 도울 수 있을까?

방과 후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느린 학습자의 사회적응력 향상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복권위원회의 지원으로 2020년도부터 ‘나답게 크는 아이’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전시 내 지역아동센터 40개소가 22년도까지 시범사업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작업기억, 수리 연산, 언어표현, 추론능력 등 인지발달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감정교육, 이완훈련, 사회기술 및 문제해결훈련 프로그램으로 사회·정서적 발달을 돕는 활동을 파견한 전담인력을 통해 지원한다.

학업수행, 친구와의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는 느린 학습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가정과 학교의 지지와 대응이 아동의 학교와 또래 적응,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남들보다 느린 아동일지라도 개별적 특성에 맞는 지원과 격려는 아동이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포기하는 ‘부적응’으로부터 보호하는 더디지만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얼마 전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출연자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여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겼다. 모두가 다 승자다”라고 이야기하며 큰 울림을 줬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아동에 대해 학업성취를 중심으로 한 줄 세우기보다는 ‘모두가 승자’라는 관점으로 저마다의 속도를 인정해줘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습격차의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느리지만 저마다의 속도대로 ‘나답게’ 클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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