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연 천안와촌초등학교 교장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청년이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유를 묻자, 그 노래에 자기의 고민이 담겨 있고 딱 자기 얘기 같아서 선곡했다고 했다.

그는 어른들에게 앞날에 관해 물으면 대부분 사람은 너는 그 길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를 등지고 외면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꿈을 찾는 어린 청년에게 어른들의 이런 말은 대못을 박는 것 같은 큰 상처가 됐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품고 산다. 또 꿈을 품고 노력하면 꿈을 이루게 된다.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처럼 되기를 소망하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그 얼굴을 닮은 사람을 간절히 기다려 온 결과, 자기의 얼굴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꿈을 만들어 간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람이 불어도 피하지 않고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는 선택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의 제약이나 구속을 당하지 아니하고 내적 동기나 이상에 따라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을 자유롭게 펼쳐 나가는 의지는 인간만이 갖고 있다.

또 인간은 머릿속으로 바라는 것을 생생히 그리면 온몸의 세포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간절한 꿈을 가진 자가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 열정을 품고 인내심으로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내적 힘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선택 의지를 갖고 바라는 것을 생생히 그리며 간절한 꿈을 갖도록 해야겠다.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은 자아실현을 넘어선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 자아실현이나 자기 초월의 욕구는 꿈 너머 꿈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꿈 너머 꿈은 꿈을 갖되 그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비전이다. 단순히 개인의 행복이나 훌륭함을 넘어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갖는 꿈을 넘어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 초월적 자아, 즉 꿈 너머 꿈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꿈은 무엇이고, 또 꿈 너머 꿈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어른들은 누구의 강요나 도움 없이 내 길을 정하고, 그 꿈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며 노력한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자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일부러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진로 문제에 관여할 정도의 여유나 관심이 없던 시대였고, 대부분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직접 나서서 할 일을 정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이 나타난다. 이른바 초식 학생이다. 초식 학생은 지시받는 데에 익숙해 누군가 할 일을 정해주지 않을 때 불안해하고, 자주적이지 못해 스스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어려워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기 스스로 꿈을 찾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학교 교육의 성공은 아이들의 표정에 있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교실의 모습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심리학 관련 글에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성분 중 70%가 물이라면, 정신을 구성하는 70%는 불안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일어날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초조해할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을 등지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꿈을 찾게 하고 더 나아가 꿈 너머 꿈을 길러 주는 일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다.

‘얘들아, 저 산 위에 올라 보자. 그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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