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왜 이리도 마음이 모질지 못할까. 크게 마음먹고 돌아섰건만 몇 걸음 채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어느 순간 화분 하나를 손에 집어 들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정원에 그득하니 자리하고 있던 오래된 화분들을 정리하자고 큰맘 먹지 않았던가.

헐렁해진 정원의 여백을 느긋하게 즐기며 이젠 과욕을 부리지 말자 했거늘 며칠 전 각오가 무색하게도 꽃집 앞을 지나다 또 분 하나를 들고 와 한 자리에 터를 잡아 앉혔다.

베란다를 정원이라고 이름하기엔 너무도 허름하고 작았지만 나름 계절의 변화를 느낄 만큼은 각기 다른 생명이 그득했다. 그곳은 풀죽은 자아를 다독이고 잠재된 생각들을 쏟아내며 하루 중 적잖은 시간을 할애하는 내가 아끼는 자리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정된 시간의 굴레에서 동동거리며 살아온 내 삶의 궤적들을 성찰하는 정신적 쉼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두어 해부터는 영양제를 주었음에도 탐스럽게 꽃을 피우지도, 계절이 바뀌어도 새싹이 돋지 않는다.

패잔병 같은 몰골들이 즐비했지만 대부분 십 년 이상을 훨씬 넘긴 연륜이 쌓인 화분들이었기에 하나하나 추억이란 이유를 매기며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하기야 사람도 불어오는 세파를 쉽게 거스를 수 없고 흐르는 세월 안에서 늙음을 비켜 갈 수 없지 않던가.해를 거듭한 만큼 튼실하니 두꺼워진 꽃대궁들을 보면서 연둣빛 새싹이 수줍게 피어나던 날처럼 가슴 설레는 감흥이 느껴지지 않고 빈틈없이 자리한 화분이 답답해지는 것은 또 무슨 변덕스러운 심보란 말인지.

나는 원래 한곳에 자리하면 쉽게 바꾸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앞서기보다는 처한 현실을 다독이는 일에 더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경제에 사리가 밝고 수익의 사고가 먼저 틔었더라면 사는 집도 몇 번을 바꿔치기했어야 함이 옳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한자리에 터를 잡고 눌러앉은 늙수그레한 모습을 사리에 밝은 사람들의 식견으로는 어떤 평가를 할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연도, 끈끈한 정도 흐르는 세월과 함께 때가 되면 느슨해져야 하거늘 과감한 변모를 노상 꿈꾸면서도 한자리를 뜨지 못한 것은 어쩜 부족한 역량을 뒤에 숨기려는 비겁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리.

정원을 정리하며 화분들을 들어내니 십수 년 동안 안분지족했던 연륜 테가 선명하다. 과감한 결단으로 달랑 몇 개 남긴 화분 안의 꽃나무들에도 여지없이 가위질해댔다. 늘어진 가지를 잘라내고 누렇게 뜬 떡잎들을 모조리 베어내니 가슴안에 쌓여 묵혀진 고뇌와 지루한 타성들이 다 잘려 나간 듯 후련하다.

빼곡히 들어차 빈틈이 보이지 않던 정원이 여유로워지니 자꾸만 눈길이 가고 더 머물고 싶어진다. 신선하게 변모한 헐렁한 자리 사이마다 가을빛이 곱게 내려앉는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